추미애 법무장관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현재 군형법 위반 혐의로 제주교도소에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송강호입니다. 제가 제주교도소에 수감된 날은 4월 3일이었습니다. 그날 추 장관님께서도 4·3 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하셨고, 제주교도소에도 찾아오셨습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저의 예순세 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제 생일과 제 딸이 낳은 아들의 첫돌을 기념하고자 온 가족이 함께 모이려고 했던 날이기도 합니다.

추미애 장관님, 제가 장관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장관님의 임무가 우리나라 정의를 세우고 불의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고 장자연 사건, 감학의 사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등 최근 숱한 사건에서 나타나는 검찰·법원의 부정·비리는 정의에 대한 국민의 신념을 훼손하고 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비하면 약소하겠지만, 제가 겪은 억울한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5월 28일, 저는 2013년 7월에 있었던 한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문을 대법원으로부터 송달받았습니다. 바로 유죄를 확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로 여러 차례 수감됐고 지금도 감옥에 있지만, 이 사건은 다른 사건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사건 당일, 저는 삼성물산이 하청 업체들을 통해 불법적 해상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 현장으로 출동했습니다. 해상에서는 준설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준설 공사는 불가피하게 해저의 부유물들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이중으로 오탁수 방지막을 설치해 진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공사 인부들이 오탁수 방지막이 이미 훼손된 상태인 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제보를 해경에게 전달하면서, 이 불법적 공사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조치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해경은 기지 건설 공사 구역에 저희가 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만 통보한 채 건설 현장 확인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가톨릭 수사 한 분과 카약을 타고 현장에 접근했습니다. 공사 현장에 해경 보트가 와 있어서 다시 해경을 불러 불법 공사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저는 바다를 오염시키는 이 부당한 공사를 고발하기 위한 증거를 직접 촬영해야 할지, 아니면 납득할 수 없는 해경의 지시를 따라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속에는 준설 공사로 해저에서 솟아오른 부유물들이 눈앞에 안개처럼 산란하고 있었습니다. 공사 현장까지 접근하자, 역시 오탁수 방지막은 산산이 찢어져 막체의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사실은 바다 위에서는 확인할 수 없어 수중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이 시점에 공사 측은 공사를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불법적 공사가 적발되는 순간에 어떻게 공사를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일 때문에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고, 5월 14일 최종적으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덧붙여 2년의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실형이 선고된 것입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 이미 6개월간 구속 재판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일이 마치 강도를 고발한 시민을 도리어 강도가 업무방해로 고발하여 시민이 감옥에 갇힌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고발자가 재벌 기업 삼성이었기 때문에, 경찰도 법원도 고발인의 말을 더 신뢰한 것이지요.

저는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일을 반대합니다. 저는 이러한 제 양심과 신념으로 4차례나 구속 수감됐고, 1년 이상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서 지내야 하는 수감 생활의 애환을 법관들이 얼마나 엄중히 여기는지 의문입니다. 제가 법관들에게 아쉬워하는 것은, 단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현장검증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틈도 없이 형벌을 선고하는 관행입니다. 법관들이 바닷속에까지 들어가 보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바다 위에서라도 당시의 해상 건설 현장을 확인했더라면, 저는 억울한 징벌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고발은 우리나라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려는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의로운 행동을 신상하지 않고, 오히려 처벌한다면 누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겠습니까.

추미애 장관님, 시민들은 우리 사회의 법이 점점 더 엄중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소된 사건의 진실에 대한 조사의 엄밀성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됩니다. 의를 행하고도 부당하게 처벌받는 억울한 시민들이 생기지 않도록 법관들의 철저한 현장검증을 강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6월 3일
평화의 섬 제주도 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추미애 법무장관님께 드리는 공개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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