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께.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타깝습니다. 대통령님의 실정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대통령님의 실책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다수 국민이 대통령님을 지금까지 지지했던 것은 무엇보다 통일을 향한 희망과 기대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가장 큰 지지 축이 무너지고 나자, 여러 악재가 현 정부의 근간까지 뒤흔들고 있습니다.

일단 이상직 의원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치부자들을 내치셔야 합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표창원 전 의원과 같은 올곧은 조력자들을 곁에 두십시오. 부동산 과열 투자나 집값 폭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기업 씨 같은 토지공개념 전문가의 제안과 부동산 문제를 기본 소득과 연관해 풀어 나가고자 하는 이재명 지사의 견해를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성추행 사건은 구조적으로 성 불평등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 기회를 더 활짝 여는 제도적 개선을 실무자들에게 맡기십시오.

대통령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책임을 미룰 수 없습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통일을 위한 여정이 어떤 국면을 맞이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지금까지의 통일 노력을 헛수고라 조롱하지만, 더 많은 사람은 여전히 참담한 폐허를 딛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통령님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이어야 합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북한보다 미국과 UN 입장에 더 가깝게 서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그 반대쪽에 서 있는 북한 입장에 더 다가서야 합니다. 북한은 국제법상으로 아직까지 미국과 전쟁 중인 나라입니다. 어떻게 전쟁 중인 적국을 향해 일방적으로 무기를 없애라는 요구를 할 수 있습니까? 비핵화를 위해서는 먼저 전쟁 당사자국들이 함께 종전을 선언해야 합니다. 전쟁이 끝나도 양국에 적대적 정서가 남아 있기 마련인데, 종전도 하기 전에 무장해제라니요.

평화조약(Peace treaty)까지는 안 되더라도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은 맺어야 합니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전 조건이어야 합니다. 자신은 세계 최강의 핵무기 보유국이면서 적국에게 핵무장을 포기하면 전쟁을 그치겠다는 제안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자존심 강한 북한 정부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진정으로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기를 바란다면 종전부터 선언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종전이 되면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이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는 북한을 옥죄는 실제적 압박입니다.

저는 북한뿐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님도 '통 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을 계속 제재하더라도 우리 남한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원조와 생필품을 포함한 기본적인 남북 교역을 시도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하고, 신속히 이를 결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 경제적 손해와 외교적 위기가 따라오겠지만, 이 어려움을 남북이 함께 힘을 합쳐서 헤쳐 나가지 않으면 비핵화의 문도, 통일의 길도 결코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님은 북미 정상을 태운 운전자이기 전에 우리 대한민국 국민의 운전자이십니다. 국민을 설득하십시오. 국제무역, 정치·외교적 고립과 시련이 일시적으로 닥칠 것을 미리 알리고, 통일을 위한 대담한 계획을 설명하십시오. 북한 주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을 반이라도 우리가 짊어지고 이 어려움을 견디며 나가자고 진정으로 호소하면, 국민들은 대통령님의 진심 어린 호소를 듣고 응원할 것입니다.

왜 저항이 없겠습니까? 북한 주민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주는 일조차도 퍼 주기를 한다고 빈정거리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 앞에서 통일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자면 당연히 거세게 반대하겠지요. 대통령님, 이 거센 반대에 맞서는 용기를 내십시오. 진심으로 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더 많은 국민이 변함없이 대통령님을 지지할 것입니다.

대통령님, 미국과 UN 눈치를 보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통령님이 동족의 문제보다 외국의 시선에 더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뿐만이 아닐 겁니다. 통일과 미국 주도의 국제 관계를 모두 동시에 얻으려는 생각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이전 대통령들과는 달리 문 대통령님은 통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시는 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북한과의 대담하고 포괄적 협력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로 인해 야기될 국제사회 저항을 국민과 함께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북한을 고립시키는 국제적 왕따의 고리에 우리나라까지 들러리를 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고리를 끊는 길은 우리가 북한 편에 서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완전한 비핵화에 상응하는 북한의 요구는 정전협정 폐기와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미군 전략 자산의 남한 배치 금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 미국의 한반도 주변 영역 군사적 시위 중단, 지금은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지만 결국 주한 미군 철수까지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대북 경제 제재와 함께 이 많은 북한의 군사적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면, 북한도 국민을 굶겨 죽여 가며 오랜 세월 완성한 핵무기를 결코 폐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미국도, 북한도 결코 자신들 입장을 바꿀 수 없음을 매우 현실적으로 직시했던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의 다른 점은 북한과 미국이 평화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이상주의자라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서 안전과 번영을 누리면서 북한을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비핵화를 추진하라고 요구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 따르는 큰 두려움을 우리도 미군과 미국의 핵우산을 걷어 내는 두려움과 맞바꾸어야만 합니다.


문 대통령님은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냉전 체제에 따른 최대 피해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우리나라 운명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지 않았습니까. 그처럼 바로 우리나라가 고통스러운 피해 당사국으로서 새로운 시대를 예언자적 통찰력으로 내다보고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국제사회는 여전히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을 향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를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핵탄두 수천 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강대국들 눈치를 보면서 불공정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묵인합니다.

대통령님, 언젠가 대통령님이 UN총회에서 다시 연설하실 기회가 오면 반드시 언급해 주셨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인도와 파키스탄, 은밀하게 핵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라엘까지. 모든 핵무장 국가를 향해 북한의 핵무기와 함께 자신들의 핵무기도 폐기하는 게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알리십시오. 남한의 대통령이 그런 단호하고 공정한 태도를 취할 때 북한과도 마음으로 통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겪은 우리 민족의 고통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디나 그러하듯이 제주교도소 감옥 안에도 온몸에 문신을 한 무시무시한 조폭이 많이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더 극악무도한 조폭들이 백악관이나 크렘린궁전과 같이 화려한 곳에서 호의호식하며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무래기 깡패들의 폭행은 국가 공권력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국제사회의 깡패 국가들은 푸른 UN의 깃발 아래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는 조폭 카르텔을 만들어 누구도 대항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되려면, 그들이 주도하는 G7이나 G12에 속해 선진국 행세를 하는 것을 목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힘없고 가난한 수많은 나라가 공감하고 동참할 만한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열어 줘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게 느껴집니다. 하늘을 덮은 검고 무거운 구름이 코로나19와 답답한 남북 관계로 짓눌린 국민의 마음 같아 보입니다. 대통령님과 우리 국민이 힘을 합치면, 반드시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힘내십시오.

2020년 7월 24일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문재인 대통령님,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을 열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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