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 사태에 홍수와 태풍까지, 재난이 끝없이 닥쳐옵니다. 혹독한 시련의 나날이 끝없이 이어지는군요. 한 국가도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처럼 폭풍을 만나 시련을 겪기도 하고 암초에 부딪쳐 좌초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격동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이런 국가적 위기 속에서 나라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군대와 국방부가 쓸모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군대는 당연히 필요하다는 많은 이의 고정관념에 끌려 다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군대는 전쟁을 위한 도구입니다. '망치 든 사람 눈에는 못만 보인다'는 말이 있듯, 군사력에 의지하는 나라는 문제를 군대와 무기로 해결하는 데만 관심을 둡니다. 군대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군대 존재 가치를 과시하고 싶은 충동이 늘 용수철처럼 눌려 있기 마련입니다.

군사비는 이웃 나라와의 싸움을 위한 보험과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보험 가입자가 사고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아무 사고가 나지 않아 보험금을 써 보지 못하는 것을 아까워하는 모순적인 마음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은 재난이나 사고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당사국이 개입하고 관여할 여지가 많습니다. 분쟁을 막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개인과 집단이 조치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합니다. 

혹자는 "군대를 없앴다가 전쟁 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따지듯이 묻곤 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터지지 않습니다. 전쟁을 위해서는 많은 군사비와 병력을 모으고 군사기지·시설·무기를 준비하는 복잡다단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자원·인력을 전쟁 대비에 쓰지 않고, 평화적 관계를 만들기 위해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 승패는 군사력의 강약에 달려 있지만 평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은 매우 다차원적이고도 복잡한 협력·연대·교류·지원을 통해 이뤄집니다.

무역, 교육, 문화·스포츠 교류, 교통망 연결, 환경문제 공조, 관광·여행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의 협력 관계를 맺어 가야 합니다. 평화를 통해 국가 안전을 지키는 일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총체적·지속적 노력을 기울여 적대 관계를 상호 의존 관계로 만드는 방식입니다. 평화로운 관계를 맺기 위한 모든 노력은 우리나라 발전과 번영을 위한 투자일 뿐 아니라, 이웃 나라 발전에도 기여하는 윈-윈(win-win)전략입니다. 군사력에 의존하는 안보는 소멸성 보험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는 자원이며, 유사시 각국이 가공할 만한 파괴·피해를 상호 주고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상대해야 할 이웃 나라는 중국·일본·러시아 같은 세계 최강대국들입니다. 이 나라들과 무력 대결을 할 경우 빚어질 결과를 냉철하게 상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패할 경우, 우리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이긴다 해도 전국이 초토화하고 수많은 국민이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  천박한 정치가들은 자신의 인기몰이를 위해 전쟁이 초래할 끔찍함을 현실적으로 직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아도취적 자만심을 부추겨 우리 군사력을 믿고 의지하게 만듭니다. 대통령님은 군대로 지키는 안보나 평화로 만들어 가는 안보 모두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어느 것도 우리나라 안전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길이 더 유리할 것인지', '계획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회복 가능성이 더 높은 길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국·미국·러시아·일본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습니다. 이 지정학적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가 군사력을 강화하는 일는 러시아·중국, 미국·일본으로 나뉜 패권 다툼의 첨병이 되는 일이요, 소위 자유 자본주의 진영 말단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나라가 비무장·중립·평화주의로 나아가면 자유 진영과 구공산 진영 중간에 위치한 조정·중재·협상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님이 우리나라를 이 방향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옳은 것인지 판가름할 중요한 시험대가 있습니다. 바로 제주도입니다. 제주도는 이미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됐습니다. 제주도 모든 군사기지·시설을 평화 협상과 대화를 위한 시설로 전환해 동북아시아 갈등·분쟁 해결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등을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도에서 진행하십시오.

당장 올해 예정된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회담도 제주도에서 성사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제주도는 구소련 고르바초프 대통령, 중국 장쩌민 국가 주석, 클린턴 미국 대통령, 고이즈미 일본 수상 등을 초대해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2000년에는 남북한 국방부장관이 제주도에서 만나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합의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 제주도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도 거반 잊혀져 가고 있는 듯합니다. 대통령님, 이 끊어져 가는 맥을 다시 이어 가시기 바랍니다. 제주도의 모든 군사시설을 평화 시설로 전환하십시오. 최고 수준의 정보력·기동력을 갖춘 최정예 국제경찰을 제주도에 배치해 치안을 유지하십시오. 강정 제주 해군기지는 국제 평화 센터로 전환할 것을 제안합니다. 해군기지 본부 건물은 평화 회담을 위한 컨벤션 시설로, 군사교육 시설은 국제 평화 대학 강의실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군인 숙소는 대학 기숙사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지 내 군사법원은 국제 사법 모의 법정으로 활용해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영외 김영관센터는 국제 평화 센터로 사용하기에 최적입니다. 해군기지는 병원, 복지시설, 체육 시설, 다양한 종교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 평화 컴플렉스는 세계적으로 귀하고 독특할 뿐 아니라, 평화의 섬 제주도에 가장 걸맞은 시설입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크루즈항까지 겸한 복합항입니다. 이곳에 평화 시설이 만들어지면, 온 세계 크루즈 관광객이 수시로 드나들며 평화를 체험하는 홍보관이 될 것입니다.

군사비밀을 지켜야 하는 군사시설과 민간항이 결합된 민군 복합항은 애초에 불가능한 조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강정 제주 해군기지는 구럼비라는 거대한 너럭바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연병장과 군사시설 일부만 철거·복원하면 구럼비바위가 그 위용을 드러낼 것입니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유산과 새로운 국제 평화 센터가 함께 어우러진 생명·평화 공원이 될 것입니다.

제가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고 제안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국경 지대입니다. 제주도민이 겪었던 일들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였습니다. 이웃 나라의 오키나와·타이완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이 두 섬은 각각 일본과 중국 변방의 섬입니다.

제주도가 탐라국이었던 것처럼 오키나와도 원래는 류큐라는 독립국가였으나, 메이지 천황 시대에 일본에 병합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의 볼모가 되어 비참한 전쟁 피해를 겪었습니다. 전후에는 일본 전쟁배상의 희생양이 되어 미국 군사기지가 됐습니다. 타이완도 원래는 토착 원주민의 섬이었지만 중국 명·청에 의해 정복당했고, 청일전쟁 이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에게 넘어갔습니다. 해방 이후 다시 중국 국민당 장제스 부대원에 의해 제주 4·3과 같이 참혹한 2·28 사건을 겪었습니다. 제주도·오키나와·타이완은 동병상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희생자의 섬입니다.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는 일은 다른 두 섬에 사는 시민에게 새로운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동북아시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제주도·오키나와·타이완을 잇는 비무장 평화 삼각지대를 만들자고 선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을 전쟁·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공존·평화의 바다共平海로 만들자고 국제사회에 제안해 주십시오.

군용기의 기착, 군함의 항해·기항을 금지하고 엄격한 비핵지대로 만들어 무력 분쟁의 완충지대가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제주도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통일의 기운을 생성·분출하는 곳이며, 중국·일본을 아우르는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 나가는 데도 중요한 곳입니다. 제주도를 '군사기지화하는 것'과 제주도를 명실상부한 '비무장 평화 섬으로 만드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고 국격國格을 높이는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대통령님, 세계는 여전히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며 군사력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 나라도 구태의연한 안보 패러다임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간곡히 청원합니다. 군사기지를 고쳐서 평화 기지로 만드는 창의적 발상으로, 제주도를 안보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시험대 삼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세계 평화의 섬 제주도가 우리나라 운명과 세계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실험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는 우리나라 안전을 지키는 바른 길이요, 소모적 군비경쟁에 국력을 소진하는 국제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는 위대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옛 예언자들은 나라가 창과 칼이 아닌 정의와 평화로 지켜진다고 역설했습니다. 저는 우리 대한민국이 '군대와 무기가 아니라 평화에 의해 안전하고 튼튼한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사에 남기기 바랍니다. 흔히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전쟁으로 점철된 지금까지 인류사는 너무 수치스러운 역사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선택하는 평화의 길이 인류사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올해는 강한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시련을 가져오는 이 바람들을 '더 강인하고, 깨끗하고, 단단한 나라가 되라'는 경책으로 해석한다면 너무 어린아이 같은 생각일까요? 생명의 근원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어떤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전쟁도 군대도 사라지게 할 태풍 같은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소원합니다. 

2020년 9월 7일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문재인 대통령님, 나라는 칼과 창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로 지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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