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제주를 상상하며(사하자)


올해로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지 16주년이 되었다. 제주가 점점 허울뿐인 평화의 섬이 되어가는 것을 염려했던 사람들은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이란 모임이 창설된 지도 어느덧 8주년이 되었다. 1월 27일, 이날을 기억하며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제주를 상상한다. 

10년간 강정사거리에서 다양한 평화의 발걸음을 환대했던 ‘평화센터’는, 자리를 옮겨 ‘강정평화센터’를 새로 세워야 했다. 공간을 옮기더라도 환대와 연대의 자리를 포기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새로 세워진 강정평화센터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허락되지 않은 기억’이라는 6.25 사진 전시회였다.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종전이 아닌 정전의 상태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이 전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2002년 아프간 난민촌을 방문했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이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아프간을 공격했다. 이미 그때에도 아프간은 고통의 땅이었다. 극우 텔레반의 집권은 여성 인권의 사각지대를 만들었고 러시아와 아프간이 전쟁(1979~1989)기간 중 매설된 지뢰는 10넘게 아프간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파키스탄 국경을 지나 아프간 카불로 들어오는 큰 길 곳곳에 버려진 탱크들이 있었고, 길 양 옆으로 빨간 칠을 한 돌들이 구간 구간 보였다. 빨간 돌을 표시해 둔 곳은 지뢰가 매설되어 있으니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런 표시들이 매일 차량이 지나가는 큰 길가에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튼튼한 건물이 요새로 쓰였기 때문에 대체로 벽돌로 세워진 학교들이 군의 요새로 사용되면서 학교 주변은 지뢰밭이 되었다. 큰 길가 옆이나 학교는 일 순위로 지뢰를 제거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매설된 지뢰들이 아직도 제거되지 못하고 10년 넘도록 방치된 상태였다. 돌에 빨간 페인트를 칠한 표시가 전부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돌들이 움직이기도 하고 페인트도 벗겨지면서 지뢰 사고가 계속 일어났다.

아이들은 빨간 돌이 벗겨진 사이로 물을 긷기도 하고 노새에게 풀을 뜯게도 하면서 주위를 잠깐 놓는 새, 어른들은 자신의 밭으로 가거나 빈 땅에 농사를 지으려다가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목발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이 빨간 돌들은 언제쯤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까? 우리 팀은 작은 마을 중학교 주변의 지뢰를 제거하고 학교를 재건했다. 그리고 남녀공학학교로 문을 열어 마을에 기증하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그 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끝나지 않은 전쟁의 소식을 아직까지 듣고 있다.

우리 나라 역시 70년동안 정전 상태로 남아 있다. 잠깐 봄날이 오는 가 싶었는데, 4.27 판문점 선언에서 한 단계적 군축 약속은 버려지고 남한의 군사력은 2017년 12위라고 하던 것을 2020년에는 6위로 올려 놓았다. 이에 북한은 배신감으로 모든 소통의 길을 끊어 버리고 뒤쳐진 군사력을전술 핵무기 개발이라는 강수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는 민족 상잔의 아픔을 너무나 깊이 기억하고 있다. 태극기부대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은 미국에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인다. 미국이 없으면 우리가 망하는 줄로 생각 하신다. 북한이라면 아직도 치를 떠신다. 국방부도 2006년 한미연합훈련을 한국군 주도로 했을 때,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당장 전작권을 넘겨줘도 군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우린 준비가 안 되어 있다"라며 전작권 환수를 거절했다. 자주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이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지휘를 받겠다고 한다. 우리 만으로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전쟁이 그렇게 두렵다면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 힘을 더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군사력을 증강하는데 수 조원을 쓰는 것이 전쟁의 위험 속으로 우리 국민을 끌고 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다. 정말 전쟁을 끝내길 원한다면 평화를 위한 노력도 전쟁을 준비하는 노력만큼 해야 한다. 미국에 상.하원의원들을 설득할 로비스트들을 보내고, 이미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중견 국가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 우리 나라의 위상을 잘 알려 공포증(포비아)에서 괴로워 하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시도하고, 남.북간의 교류를 민,관 차원에서 더욱 활발히 만들어 내는 등, 구체적인 평화를 위한 행동들을 위해 국방비가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안보를 더 보장할 것 같다.

우리나라 임시정부의 수장이었던 김구 선생님은 소원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합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입니다.” 

2016년 테러 방지법과 국가 보안법 폐지를 위해 무제한 토론을 했던 국회의원들을 기억한다. 국민을 대표해서 정말 열심히 싸워 주고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들의 절절한 호소에 역시 밤새 응원했다. 무력이 아닌 높은 문화의 힘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꿈꾸는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이 든든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정도의 부력도 강력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엔 이 추운 겨울 따뜻한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고, 오늘 내일 직장을 잃을까 근심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 많고, 목숨을 걸고 눈발을 헤치고 배달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생명을 담보하고 단식과 걷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김구 선생님이 꿈꾸었던 높은 문화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부가 있음에도 부를 움켜쥐고 나누지 않겠다는 탐심, 생명에 대한 무감각한 감수성이 어떤 사람들을 이렇게 벼랑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고 우리 나라 정치의 가장 큰 숙제 하나는 평화다. 한반도를 비핵화 지역으로 만들어 평화 통일로 가는 길에 제주는 너무나 중요한 동북아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다. 제주가 2005년 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것은 하루 아침에 그냥 선포된 것이 아니다. 1991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이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제주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정상회담, 같은 해 김영삼 대통령과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 회담, 2004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회담이 있었다. 이렇듯 한반도의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정상들과의 만남이 성사되고 제주 평화 포럼 등, 학술회는 제주가 ‘세계 평화의 섬’으로 선포 되도록 도왔다.

그런데  ‘평화의 섬’으로 선포된 지 16년이 되고 있는 제주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강정에는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해군 진입도로가 들어서며 서귀포시 주민들의 식수인 강정천을 오염시키고, 공군기지로 활용될 것이라고 의심받는 제 2공항은 10개의 오름을 자르고 100개가 넘는 숨골을 막아 만들려고 한다.  ‘평화의 섬’ 제주가 점점 생명이 아닌 죽음의 섬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평화를 담보하지 않고는 유네스코 3관왕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제주가 지켜 질 수 없다. 2003년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국내외의 석학들이 모여서 제주가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5가지의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 중의 첫째가 제주가 비무장 중립 지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쉬운 성취가 아니다. 그래서 당장 임기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정치가들은 이것이 길이 아니라고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이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높은 문화의 힘이 나라의 대세가 되는 나라! 죽임을 싫어하고 생명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나라! 누구나 살아 보고 싶은 나라! 그런 나라가 되기를 꿈꾸며 거대한 국가 폭력과 싸우는 이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는 그들의 피와 눈물과 땀방울의 열매다.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일은 미국의 패권에 이용 당하는 군사기지화가 되는 제주를  거절하고 제주의 미래 운명 뿐 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와 동북아의 평화 미래가 달린 역사적인 과업이다.



구럼비에 간 이유로 구속적부심 앞둔 송강호, 류복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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