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술라베시 긴급구호활동

슬라베시에서 개척자들 아체팀(3R) 익산의 소식을 나눕니다.

팔루에 도착하기 전 먼저 동갈라(Donggala)에 잠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팔루(Palu)와 함께 가장 큰 지진 재난 지역입니다. 어스름 해 질 녘 운전기사 이르사와 함께 해변에 앉았습니다


[꾸미기]photo_2018-10-07_08-58-57.jpg(사진: 개척자들 3R 익산)


[꾸미기]photo_2018-10-07_08-59-19.jpg(사진: 개척자들 3R 익산)


그가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동갈라 해변에 설치 되어 있는 임시 재난 부스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바로 2016년 아체주 피디 자야에 있었던 지진이 떠올랐습니다. 그때의 모습과 거의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전기는 끊였고, 무너진 집 옆으로 천막을 연결해 잠자리와 쉴 곳들이 임시로 만들어진

[꾸미기]슬라베시 사진2.jpg(사진 출처;Ap 연합뉴스)


그렇지만 제 마음을 가장 불편하게 했던 것은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종이 박스를 들고 구걸하는 모습 이였습니다. 팔루로 가는 어느 차도 멈추어 서지 않았습니다. 우리 트럭에 있는 인도미(라면)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팔루로 가는 길 내내 그러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박스에 쓰여진 우리도 재난의 희생자입니다.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kami juga korban bencana, tolong di bantu. Tolong)” 이런한 말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팔루에 가까워지자 쓰나미에 쓸려 온 집과 나무와 부셔진 도로들에 뒤엉켜 거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2004년 아체의 쓰나미를 떠올렸습니다. 시내에 들어서자 이미 인도네시아 군대가 치안을 지도하고 있었습니다.


[꾸미기]photo_2018-10-07_08-59-09.jpg(사진: 개척자들 3R 익산)


길거리에서는 아이들이 먼지 속에서 지나가는 차들에 도움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 장소를 지나 가는데, 심한 냄새가 났습니다. 아마도 건물 잔해 속에서 아직 사체를 수거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팔루 시청으로 가는 부셔진 긴 해변을 지나는 동안 전기와 통신은 두절 상태였습니다.

6일 아침에 팔루 마팔라(자연을 사랑하는 모임) 친구 예르맨과 함께 쓰나미 피해 지역인 탈리세(Talise)에 갔습니다. 언론에서만 보았던 이 상황들을 직접 목도하면서 뭐라 표현할 말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다만 제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체가  생각 난다는 것입니다. 피디 자야의 지진 때문에 바와 스름빠의 지진 때문에 만나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와 팔루의 마팔라 친구들은 시기(Sigi)군에 있는 돌로(Dolo)라는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아마도 이 지역이 3R의 임시 재난 사무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지역은 쓰나미 때문이 아니라 지진 때문에 피해를 당한 곳입니다.


[꾸미기]photo_2018-10-07_08-59-13.jpg(사진: 개척자들 3R 익산)


그곳에서 저희는 텐트로 쓸 수 있는 천막을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른이 달려오시더니 텐트가 남아 있는 것이 없는지, 텐트가 너무 필요하다고 지금 이곳의 상황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때 저희 차량 주위로 어린이와 어머니들이 몰려와 구호 물품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 자원 봉사자가 했던 말이 기억났습니다. “생필품을 나누어 주다가 달아나야만 했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차 안에 있는 물품들을 강제로 빼내려고 밀려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곳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약탈이 단순히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TV, 핸드폰, 가방, 신발 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아픔이 자연 재난에서 그치지 않고 도덕적 재앙으로 넘어 가고 있다는 몇 몇 친구들의 염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기도제목


 - 한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과 평온 했던 일상을 잃어버린 슬라베시의 주민들을 위하여

 - 긴급구호가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재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봉사자들이 지치지 않고 그들의 페이스를 잘 조절할 수 있도록

 - 삶의 끝자락에서도 도덕의 상실이 아니라 인류애의 자각이 일어나는 현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