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술라베시 긴급구호활동

술라베시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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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짧은 시간 함께한 것이 민망하고 죄송스러운데 고맙다 말해주시고, 손을 꼭~옥 잡아 주시고, 다시 왔던 것처럼 또 다시 오는 거냐 계속 물어봐 주시고, 가지 말라 붙잡아주십니다. 다시 전 사랑의 빚진 자 되어 살루아 마을을 떠나 왔습니다. 지금 한국으로 돌아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술라베시의 마지막 소식은 마음에 남아 있는 분들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먼저는 부아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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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부 아미를 만난 것은 오젝(오토바이 택시) 운전수로 만났습니다. 짧은 머리에 청바지와 청자켓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처음에는 남자인 줄 알았습니다. 모슬렘 지역에서 여성의 이런 차림은 굉장히 의외의 모습입니다. 커피를 대접하니 한 번도 대접받아 본 적 없는 이처럼 수줍어하고 고마워했습니다. 스스로 만든 것인지 주위의 사람들이 만들어 버린 것인지 경계를 넘지 않으려 조심하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항상 피곤하고 지친 모습으로 구석에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괜히 신경 쓰여 그가 올 때마다 커피를 대접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조리 있게 할 줄 알고 상대방의 말도 경청하고 이해하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보통 그 사회에서는 일상적이지 않은 복장을 하고 있을까 더 궁금해졌습니다. 물어보니 주위에서 자신을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신경 쓸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부아미는 지금은 이곳에 살고 있지만 포소에서 종교갈등이 시작될 때 그 곳에서 중학교를 다녔었습니다. 삼촌이 선생님으로 계셨던 기숙 학교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997년 학교가 불 타면서 모든 기숙학교들이 휴교령을 내리고 고향으로 돌려 보내 졌을 때 돌아왔습니다. 잠깐이지만 그때 너무 무서웠다고 합니다. 자기는 돌아왔지만 그 후에 한 교실에 있었던 친구들이 많이 죽었었다고그렇게 돌아와 얼마 안 있어 16살에 아빠에 의해서 20살이나 더 나이 먹은 사람과 결혼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아빠의 협박이 무서워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결혼한 남자는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어린 신부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너무 자주 매질을 했습니다. 함께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땐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부아미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지옥을 견디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그도 폭력을 휘두르면서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지옥 같은 삶을 10년을 살았다 합니다. 7년 전 남편이 병사했습니다. 그 수줍음 많고 조용한 사람이 무술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어두운 밤에 돌아다닐 수 있다면서 또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엄지 손가락을 올려 보입니다. 폭력의 경험으로 위축되어 있고, 뜻하지 않은 재난으로 천막에 살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켜내고 있었습니다.

 

마마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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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모슬렘의 첫 번째 기도 시간이 끝나면 마마 이에는 밤새 준비한 붉은 양파를 싣고 시장으로 출발합니다. 집도 아이들도 재난에서 무사합니다. 그것이 고맙고 감사해 이웃들에게 잠시 거처가 생길 때까지 지낼 수 있도록 집을 개방했습니다. 저 역시 처음 살루아 마을에 갔을 때 잠잘 곳을 신세 졌습니다. 그 넉넉한 품을 가지셔서 삶에 큰 어려움이 없었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결혼한 남자가 알코올 중독으로 심한 정서 불안으로 폭력을 휘둘러서 견디다 못해 이혼하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이 사회에서 흠이 될 수도 있지만 현 남편이 데리고 온 아이들을 자신의 친 아이들과 조금도 차별없이 대해 주어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다 합니다. 그분의 넉넉함으로 저희 발런티어들은 쉴 곳이 있었습니다.

 


이부 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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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넘어가면서 마그립이 되기 전 마을 청년들이 둘러서서 배구를 합니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항상 질밥을 쓰고 함께 배구를 하시는 이부가 계셨습니다. 항상 지나 가면서 만나면 너무 기쁘게 인사를 해 주시고 안부를 물으시는 고마운 분이셨는데, 하루는 함께 앉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찌나 말씀을 유머 넘치게 하시는 지 정말 함께 이야기할 때마다 많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마을의 배구 선수이셨고 아주 잘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지진이 있었던 그 당시를 이야기하셨습니다.

“15초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땅이 흔들리면서 이 마을이 이렇게 무너지더라. 만약 그게 30초가 되었으면 어찌 됐을까 끔찍하다. 기도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나를 이쪽 저쪽으로 흔들고 저 도랑으로 날려 버렸다. 그때 남편과 아이들도 밭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바로 앞에서 다리가 끊어져 생명을 구했고, 나는 도랑에 떨어져 집이 무너질 때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명랑하시던 분이 그 이야기를 하실 때는 눈시울이 젖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와 주어 고맙다고 손을 꼬~옥 잡고 한 참을 놓지 않으십니다.

가족을 잃으신 분들을 만나면 전 아직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이고, 그분들이 힘을 내길 옆에서 기다리는 일입니다. 어설픈 저의 위로가 그분들의 마음을 더 슬프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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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질밥을 쓴 모슬렘 친구들과 질밥을 쓰지 않은 크리스챤 친구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웃어요.jpg


임시로 지은 집들이 복구되고 학교가 지어지려면 아마도 2년은 걸릴 것입니다. 긴 시간입니다. 마을이 힘을 모아 함께 해야 합니다. 저는 이분들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관용을 일상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교실 안에 크리스천과 모슬렘이 함께 있지만 이 아이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문제를 풀고 함께 놀이를 합니다. 함께 작업을 한 살루아 마을 풍경에는 교회와 모스크가 나란히 한 개씩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교회를 하나 더 그리면서 다른 친구에게 모스크도 하나 더 그리라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이 있는 살루아는 복구를 기다리는 시간을 일상으로 살아 가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면서

저는 이 마을에서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이 많이 먹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