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의 지킴이들께 2020.5.9. 토요일


안녕하세요? 감옥에서 문안합니다. 아직 이른 아침입니다. 밖에는 어둠속에서 비가 내리고 바람소리도 요란합니다.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강정포구에 묶여 있는 요나스 웨일이 파손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잘 지내고 계시나요?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세상과 단절된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저는 감옥안에서도 자유롭습니다. 양심과 신념의 자유를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몸은 자유로와도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감옥 속에 갇힌 수인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과 연결되어 뜻과 정신이 소통되고 순환되고 있어서 외롭지도 않습니다


우리 방에는 8명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모두 고민과 염려로 짓눌린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들 가운데에서 함께 고민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민과 반성은 다른 재소자들과는 다릅니다. 저는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해군기지를 털어내고 구럼비를 되찾아 김영관 센터를 강정평화센터로 바꾸고 기지 건물들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고민이고 저의 생각과 경험의 최선을 다해서 평화운동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입니다.


강정의 동지 여러분, 우리가 강정 마을에 왔을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맙시다. 갈대는 바람부는 대로 휘어질지라도 우리는 구럼비 바위처럼 꿋꿋이 우리 자리를 지킵시다. 어느날엔 가는 바람의 방향이 바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투쟁해 나가면 반드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가 진주만 습격이나 9.11 테러보다도 더 위험하고 심각한 전쟁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의 거대한 항공모함들도 코로나로 전투력을 상실한 고철덩어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이것은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징조입니다. 후쿠시마 핵 발전소 폭발때도 일본군대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현재의 재난을 타개하기 위해 국방비의 일부를 재난 수습비용으로 할애한다는 데 저는 더 배폭 국방비를 깍아서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제주 해군기지를 개방하여 구럼비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의 방식이 있듯이 여러분의 방식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합시다. 중요한 것은 실천일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막장과도 같은 이 감옥의 흑암속에서 희망의 빛은 더 강렬하고 찬란합니다. 절망감이 들면 감옥으로 들어 오세요. 여기서는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해군은 우리보다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그들보다 강합니다. 사자는 들소보다 강하지만 들소떼는 사자 무리보다 훨씬 강합니다. 사자는 도망치지 않는 들소를 두려워 합니다


군사보호구역을 더 확대해서 크루즈항 선착장까지 늘리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을 부탁드립니다. 강정을 완전한 군항으로 만들려는 군부의 야욕을 막아주기 바랍니다. 해군기지는 핵 폐기물과도 같습니다.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 조차 합니다. 이 쓰레기를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하기를 바랍니다. 합법투쟁을 하실 분들이나 양심에 따른 초법 투쟁을 하실 분들이나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며 함께 힘을 합하여 걸어가길 바랍니다


저는 매일 아침 문정현 신부님의 [길 위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나다] 라는 강론집을 보며 기도와 묵상을 드리고 있습니다. 늘 가까이 지내다 보니 잘 몰랐는데 말씀을 볼 때 마다 감동과 은혜를 느낍니다. 감옥에 있다 보니 영혼이 더 주려서 인지 모르겠지만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음에 새겨집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격려의 편지 감사드립니다. 보내주신 영치금도 넉넉해서 감옥에서 필요한 물품들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강풍이나 태풍이 불면 강정항의 요나스 웨일을 튼튼하게 고정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표구의 SOS컨테이너를 와이어로 고정하는 것도 부탁드립니다. 저는 하느님이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는 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해군기지는 반드시 사라질 겁니다. 확신을 갖고 포기하지 말고 맞서면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잠들지 말고 깨어 그 날을 맞이합시다!


20205.9.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