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의 평화의 나무들에게


안녕하세요? 벌써 11월에 들어 섰네요. 오늘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날씨 추워진다고 하네요. 다들 건강하신지요? 최근 제임스 도르라는 분이 쓴 [악한 사람들] 이란 책을 읽고 있습니다. 중일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 군인들의 경험담입니다. 이 책을 통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법죄행위이고 군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파괴하는 짓인지를 실감나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정말 중요한고도 필요한 저항을 하고 있다고 응원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피해자들로부터 악을 행하는 가해자보다도 그를 침묵하며 지켜보는 방관자들에게서 더 분노를 느낀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전쟁도, 법죄도 다 이 방관자들 때문에 지속되고 확산됩니다. 방관자들의 입속에는 나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데…”라는 무거운 변명이 돌멩이 처럼 혀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비겁한 도피입니다. 몇 년 전에 박로드리고라는 친구와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했었습니다. 로드리고는 강정에도 여러 차례 왔었던 친구입니다. 그는 100만명이 집단 수용되어 있는 로힝야족의 난민촌에서 절망감과 무력감을 호소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사진기로 난민촌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사진첩을 출간했습니다. 그 사진첩의 제목이 “I can do nothing ! ”(나는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요!)였습니다. 그 사진첩으로 로힝이야 난민들을 돕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도 독일의 나치정권 하에서도 사람들은 똑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엄혹한 시대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무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실행하였습니다. 무장 투쟁을 한 이도 있었고, 교육 운동을 한 이도 있었습니다. 쫓기는 지사들을 숨겨준 사람도 있었고 가스실로 끌려갈 유대인 어린이들을 감추어준 이들도 있었습니다. 강정에서도 이미 해군기지가 다 지어졌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아침에 100배 절도 할 수 있고 11시 미사에 참여 할 수도 있고, 12시 인간띠 잇기에 와 손잡을 수 있고 노란 깃발이나 리본을 기지 앞에 걸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요. 무엇이 되었든 한 걸음만 내 딛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에 디딜 자리가 보일겁니다


저는 해군기지가 빠른 시일내에 폐쇄되지 안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저항이 강정 마을을 반전 평화 운동의 훈련소가 되고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반전 평화 운동을 배우고 경험한 이들이 곳곳에서 훌륭한 평화 운동가로 활약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구럼비 개방 국민청원을 해주십시오. 제가 구속되기 직전 기자회견을 하자는 제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참여 재판을 원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번이 세번째 부탁입니다. 구럼비 개방국민청원을 부탁드립니다. 20만명이 동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패는 아닙니다. 구럼비를 잊어 버린 많은 이들의 뇌리에서 다시 구럼비에 대한 기억이 살아 날 것입니다


구럼비가 이미 다 파괴되었을 거고 남아 있는 소위 수변공원의 구럼비 잔해는 볼품이 없는데 그것을 개방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분들도 계신줄 압니다. 저는 구럼비가 그렇게 복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심하게 파괴되었다고 하더라도 다시 정성을 다해 복구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상처입은 상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꼭 구럼비 개방을 위한 국민청원을 통해서 다시금 시민들이 구럼비에 자유롭게 들어가서 구럼비를 기억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날이 오게 해 주십시오. 저는 구럼비 공원이 개방되면 그 다음은 해군기지 전체를 개방시키기 위한 투쟁이 시작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군은 그 가능성 때문에 악착같이 수변 공원 개방을 반대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싸움에서 반드시 승기를 잡기를 바랍니다. 저는 구럼비 공원 개방을 통해서 그곳을 교두보로 삼아 해군기지 폐쇄와 구럼비 공원의 확대 복원운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럼비로 인해 갇혀 있는 저를 위해서라도 구럼비 개방 국민청원 운동을 꼭 전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에게 평화를 빕니다.


2020.11.2

제주 교도소에서 물 귀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