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께


이제 누워있는 백비를 세워야 할 때가 왔습니다!


21대 총선 이후 4.3 특별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고 조만간에 해결 방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가장 큰 쟁점은 희생자 유족들에게 돌아갈 배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만일 배보상이 우선이 된다면 4.3 희생자들에 관한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묻혀버리게 될 것입니다그 규모에 있어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최근에 벌어졌던 두가지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이다.


하나는 2010 326일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입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유가족들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규명에 천착하기 보다는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추대하고 배보상 문제로 그 사건을 조속히 종결 지었습니다. 그 결과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미궁으로 빠졌고 아직까지도 논란을 양산하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2014416일 세월호 침몰로 인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은 배보상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박근혜 정부에 맞서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으로 넘어온 이 시점에도 진실규명을 위한 치열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속적인 투쟁을 응원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난의 목소리들이 온 사방에서 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온 국민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진실 규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 변화의 엄청난 추동력이 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진실에 대한 끝없는 추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1대 총선 유세에서 여야후보 모두가 4.3 특별법 제정에 앞장서겠다고 공약을 한 마당이니 이제 특별법 제정은 급 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4.3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돌아갈 배보상의 규모와 실행이 그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4.3 희생자와 유가족들이 늙어가기 때문에 더 이상 배보상을 지체하면 안된다는 주장이 빗발치고 있지만 아무리 급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고 그 순서가 뒤바뀔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실패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특별법의 논의는 무엇보다 먼저 국가 폭력의 남용에 대한 엄중한 진실규명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노당과 무장대 활동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여전히 북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전위대로 낙인 찍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자생적인 정치 조직의 무장투쟁으로 볼 것 인지? 이에 대한 신중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좌파든 우파든 누구에게나 사상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사상을 폭력적으로 타인에게 강요하는 죄악입니다. 여기에는 무장대도 군경도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비인도적인 무력사용에 처벌의 초점이 맞추어 지지 않는다면 4.3희생자들에게 씌워진 빨갱이라는 낙인을 벗겨 내기는 어렵습니다


4.3은 일제 식민지 역사의 저주스런 유산이었으며 미,소 냉전 체제하에서 강요된 비참한 희생이었습니다. 많은 민족주의 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이 일제로부터 독립과 자유를 얻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정치 조직화된 소위 좌익들이 분단 이후 6.25라는 불 같은 시련으로 고착되어 버린 대립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매도된다면 그들의 고귀한 동기와 열정이 너무도 무참하게 짓밟힐 것입니다. 4.3은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고 밝혀내서 역사의 진보를 이루는 새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4.3의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논쟁이 우리나라의 분단을 지속시키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허물고 평화적인 통일의 기반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3평화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의 비문은 통일이 되고 나서야 쓰일 수 있다고 믿는 한 4.3 유가족은 국가의 혹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백비에 쓰여져야 할 진실한 비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4.3의 유가족이 평화통일의 선도가 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열 선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4.3의 희생자 영령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