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평화 신학 2

2021.01.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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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실천 신학 2


신학의 분야를 분류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성서 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으로 나누는 것이다. 여기서 실천신학은 일종의 응용신학으로 성서신학과 역사, 조직신학의 연구결과들을 현 상황에 적용하는 신학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는 예배학, 기독교 교육, 목회학, 목회 상담학, 디아코니아 경우에 따라 선교학을 포함하였다. 신앙의 실천을 주 내용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 다른 신학의 내용을 응용한다는 점에서 부가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런 실천신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서 신학의 중요성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록한 말씀에 대한 연구에 있다. 나는 실천신학의 중요성은 적용에 있다기 보다 오늘날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행위를 우리 현재 살아 있는 인간이 성령의 감동으로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을 지나간 시대에 이미 기록된 말씀으로 확증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활동의 무대요, 그 현장이다. 이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을 갖고 역사 하신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명령과 본부를 순종할 수도 거부 할 수도 있다. 무고한 시민의 이마에 총을 겨눈 군인에게 두려워 떠는 가련한 힘없는 시민의 표정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 온다. 이 명령을 순종할 것인지 거부 할 것인지는 총을 들고 있는 군인의 몫이다. 오랜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집과 농지를 다 잃어버린 가난한 농부가 부르짖는 전쟁을 그치고 무기들을 녹여 농기구를 만들라는 소리에서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묵시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실천신학은 오늘날도 역사의 현장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위대한 행위를 증언하고 그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에 동참시키는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진행되고 경험되는 사건이다. 이것은 불의한 현장에서 정의가 세워지고 불화한 곳에서 평화가 이뤄지며 억울하고 슬프고 고통스런 현실에서 기쁨이 만들어지는 거룩한 사건이다. 이렇게 폭력과 강압으로 억울하게 고통받는 부당하고 불의한 현실에서 상처받고 억눌린 민중들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신원 하신다. 그러므로 실천신학의 현장은 바로 그 고통받는 민중을의 현장이다

이점에서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은 일종의 실천신학이다. 실제(Praxis)에서 출발한 신학들이요 그 현장속에서 말씀을 재해석하고 교회역사도 재구성 했으며 교회의 현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재 설정했다. 성서신학은 실천신학의 외연을 규제하며 실천신학은 성서 신학을 활성화 한다. 인간의 경험은 주관적이고 객관성을 띄기가 어려우므로 성서신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며 고문서의 당위적이고 규범적인 해석의 틀을 깨고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는 현장성은 실천에서 비롯된다


내가 신학생 시절 배웠던 실천신학은 언제나 응용과 적용의 기술들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원천성(Originality)이 없었다. 부가되고 파생된 신학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가 분쟁과 갈등으로 가족이 죽고 집이 불타버린 난민들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자각을 갖게 되었고 바로 이 인식과 경험에서 실천신학은 출발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 실천신학의 원천성(Originality)을 응용과 적용신학으로서의 실천식학보다 더 우선되어야 하고 더 중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신학이 온전성과 역동성(Dinamics)과 활력(Vitality)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