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영성(2021년 1월 18일)

2021.01.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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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영성


평화는 한 그루의 나무처럼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자라나기도 하고 말라 죽기도 합니다. 이 평화의 나무가 더 풍성한 생명력을 갖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생태계가 갖춰져야 합니다. 척박하지 않은 좋은 땅도 필요하고 적절한 거름도 있어야 합니다. 이 생태계에서 영성은 평화라는 나무를 위한 햇빛과도 같습니다. 정의가 없이 평화는 없다는 말은 옳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정의는 정의의 이름으로 또 다른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정의로운 동기를 폄훼할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정의는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폭력은 평화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를 위한 정의는 폭력이 아니라 영성에서 비롯됩니다. 영성이 만들어 내는 정의의 힘이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 냅니다. 어떠한 분노에도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릴 수 있는 힘, 어떠한 증오에도 사랑으로 맞설 수 있게 하는 힘, 어떠한 복수의 악마적인 충동에도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힘, 어떠한 폭력의 횡포에도 비폭력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영성의 힘입니다. 나는 이것이 폭력에 굴하지 않고 대항하여 진정한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영성의 힘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간디는 이 영성을 샤티하그라하라고 했습니다. 단 한 사람 만이라도 이 샤티하그라하를 내면에 담고 있으면 이 사람으로부터 그 힘이 퍼져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간디는 믿었습니다. 평화의 영성은 마치 불과 같아서 비록 한 자루의 작은 촛불일지라도 큰 산을 태울 수 있듯이 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간디는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영성의 수련은 평화 운동가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평화의 실천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영성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중요합니다. 또한 신부와 목사가 평화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해군은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고 그 위에 시멘트 콘크리트를 부어 전쟁기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군사기지가 우리에게 평화를 지켜줄 것이라고 선전합니다. 그러나 저는 있는 그대로의 그 구럼비 바위에서 예전처럼 평화를 위해 기도드리고 묵상할 수 있도록 그 신성한 바위를 보존하는 것이 더욱 더 진정한 평화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 해군기지를 허물고 구럼비를 다시 복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영성은 햇빛처럼 평화의 나무를 자라게 합니다. 평화의 영성을 부정하는 것은 햇빛 없이도 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해군기지 옆 길 가의 천막에서 매일 미사를 올리시는 문정현 신부님과 김성환 신부님, 그리고 이 천막 미사를 지키시는 정선녀 공소회장님과 빛도 없이 뒤에서 섬기시는 방은미 선생님과 같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