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 샘터에서 온 소식

2012.04.11 00:49

개척자들 조회 수:1450

1 나무와 작별하는 정주 간사님.jpg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진개울의 다리를 지나 아랫집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있는 작지도 아주 크지도 않은 나무였습니다. 두 팔 벌려 안으면 꼭 안길 그런 나무였습니다. 그 나무는 27년 전에 송규문 할아버지의 손에서 싹을 틔워 지금까지, 정확히 2012년 3월 29일까지 기도종을 가지에 달고 우리와 함께 봄바람에 잎사귀를 흔들고, 추위엔 파르르 떨던 나무였습니다.

프리티벳운동단체 랑첸의 간사님으로부터 티벳 독립 운동 이야기를 듣고 샘터로 돌아오는 봉고차 안에서 우리는 내일까지 이 나무와 이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소식에 형우 승현 간사님의 딸 예본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 시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무와 함께 커온 예본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우리도 마음이 참 짠했습니다. 하지만 샘터가 새로 지어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리신 허철 간사님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알기에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2 바자회 물품 정리중.jpg

목요일 점심, 구호물품의 옷을 바자회에 내놓기 위한 분류 정리 작업 중에 이난영 간사님은 나무의 기도종을 울려 기도시간을 알렸습니다. “이 기도종도 이 나무에선 마지막이네…” 허철 간사님의 목소리 들으며 우리는 한결같이 기도종을 지탱해준 나무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며 제주지역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나무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기도의 시간을 마련해준 뒤 다섯 번에 걸쳐 커다란 가지와 기둥을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다 잘려진 나무의 밑동엔 나이테가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그어져 있었고 표면은 아주 촉촉해서 자꾸 손으로 쓸어 담게 됐습니다. 영희 간사님은 나무의 밑동을 한없이 바라보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나무와 이별한 다음 날 금요일 아침, 평화교육팀은 가림중학교 평화지킴이 수업에서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업의 첫 시간에 우리는 아이들과 인디언식 이름짓기를 했습니다. 자신에게 인상 깊었던 사건이나 자연의 모습 등을 이름으로 만드는 시간이었지요. 재밌고 기발한 이름이 많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이름을 바꿔야 하는 한 친구는 자신을 ‘두 개의 이름’으로, 얼굴에 잔잔한 기운이 맴돌았던 친구는 ‘먼산을 바라본다’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이름을 딴 친구는 ‘엄마는 외계인’, 빨리 패스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닉네임을 ‘패스’로 정한 친구와 그 옆에 덩달아 따라 지은 ‘ 메가패스’ 등등 아이들은 이름 속에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였습니다.

진행한 영희간사님은 뜻밖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뜻밖이라기 보다는 아이들의 밝은 웃음 3 가림중에서의 평화수업.JPG 속에 숨기고 싶었던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잘가, 나무야’ 라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제가 사는 곳에 화재로 인해 집을 새로 지어야 해서 나무를 자르게 되었어요. 그 나무는 제가 개울에서 세수를 하거나 아침에 창을 열고 공기를 들이 마시는 모습을 쭉 그 자리에서 지켜봐 주던 나무였어요. 오랜 시간 함께 해준 나무와의 이별을 기억하고 싶어서 ‘잘가, 나무야’라고 지었어요.” 영희 간사님의 말은 아이들과 우리의 마음에 여운을 남겨놓았습니다.

그날 밤 청파교회에서 임원회의와 더불어 화재복구 일손을 도우러 다섯 명의 형제 자매 분들이 오셨습니다. 밤새 어둠에 가려져 나무의 잘려진 기둥과 나뭇가지가 깔린 바닥이 다음 날 아침에 환하게 드러났습니다. 세 명의 청파교회 청년들이 합세해 하루종일 잘려진 나무를 치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잘려진 나무는 한 쪽으로 옮겨져 겨울에 땔감으로 쓰일 예정이랍니다. 일을 마친 사람들은 귓 속까지 새까만 숯으로 덮여 있어 얼마나 애를 쓰며 노동하셨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샘터의 화재현장은 청파교회 청년부의 도움으로 조4 나무 정리 작업하는 청파교회 청년들.JPG 금씩 제자리를 찾아갔습니다.


작년 겨울 샘터의 화재 이후로 생긴 이별의 상실감은 여러 따듯한 도움의 손길로 채워지다가도 이렇게 하나의 생명이 떠나가면 이내 가슴이 시려집니다. 아린 마음을 다독이다가 퍼득 깨닫습니다. 이제 곧 부활절입니다. 샘터에서 상실하였던 것들도 그 날엔 함께 깨어나겠지요. 잿더미가 된 샘터의 산장도, 그 속에 있던 추억의 흔적들도, 산장을 둘러쌌던 크고 작은 나무들도요.

이번 주 목요일엔 대아교회에서 개척자들이 특송을 합니다. 혼성 4부 합창으로 “오 거룩하신 주님”을 부릅니다. 우리가 부르는 노래처럼 그 거룩하신 주님께서 이번 한 주간도 분쟁지역에서 몸과 마음으로 애쓰는 여러분에게 고난의 눈물 뒤에 오는 부활의 기쁨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2012. 4. 2. 샘터에서 은경이가
5 잘린 나무에서 나온 빈 둥지.jpg [기도 나눔]

형우, 승현, 철, 민정, 정래, 영희, 정주, 난영, 기철, 은경, 예본, 다후, 가희, 신
1. 새로운 샘터 재건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 꿈꾸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계획해 나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2. 샘터 재건에 필요한 기술적, 재정적, 인력적인 지원이 적절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 재건을 이끄는 허철 간사에게 지혜와 건강을 더하여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새 생명을 출산한 민정이의 몸과 마음의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며 동생을 본 가희도 언니로서 가족의 구성원이 된 동생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이번 일을 통해 흩어지고 분주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함께 모으고 다른 지체들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