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6일] 일본에서 온 소식입니다

2011.05.16 16:56

개척자들 조회 수:1341

일본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주에 이어 저희는 월요일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배낭과 함께 도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도쿄로 가게 된 것은 이번 주부터 센다이에서 다시 재건 일을 하기 위해 센다이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피곤한 난영이.JPG


그러나 전날 난영이 열심히 자료를 찾아 알아낸 것과 달리 도쿄에는 센다이행 버스가 결행되어 그날 저녁 11 59분 야간버스를 신주쿠에서 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평소와 같았으면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좀 더 구경할 수 있겠다는 즐거운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날 츠쿠바 동경교회의 야외예배에 무리를 하고, 짐을 정리하는 과정에 둘 다 밤 늦게까지 잠을 못 자서 피로가 꽤 쌓여 있었습니다. 또 도쿄에 너무 이르게 도착하여 마땅히 쉴 곳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점심시간 즈음에야 편히 기댈 수 있는 소파가 있는 쉴 곳을 찾았습니다. 난영은 너무 피곤해서 그 곳에 소파와 벽에 기대어 5시간 가까이 잠을 청했습니다.

 

정말 꼼짝 않고 잠을 자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거기다 먹는 것도 채식 위주라 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쿄에서의 하루는 너무나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겨우 야간버스를 타고 6시간 걸려 센다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너무 일러 저희는 센다이 역에서 좀 쉬다 택시를 타고 저희들이 앞으로 재건 작업을 하며 숙박하게 될 Y.W.C.A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2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저희들은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오늘은 좀 쉬며 적응할 시간을 줄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지만 우선 따라오라며 일본국제기아대책 물자창고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안을 했으나 짜증과 질책성 말로 지금 뭐 하러 왔느냐?”라며 다시 데리러 갈 사람도 차도 없으니 창고에서 알아서 일하며 쉬어라는 답변만 들었습니다.

 

물론 약속된 시간을 지키지 못해 늦게 간 저희들의 실수도 있었지만 저희들을 향한 일방적인 태도와 말들에 저희들도 속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달리 난영은 비록 속이 상하지만 이제 함께 일하는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만 내세워서는 안 될 것 같다며 우선 조금 더 인내를 가져 보자며 독려하는 모습에 참 든든했습니다. 난영이 비록 저보다 어리지만 누나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가와사키의 60대 청년들.jpg



그렇게 일을 마치고 숙소로 갔습니다. 먼저 일을 마치고 와서 쉬고 계신 봉사자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의 어설픈 일본어에 한국사람이세요?”라며 반갑게 말을 건네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가와사키 지역에서 온 초대교회 성도 분이신데, 전도사님을 포함해 다섯 분이 재일교포셨습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 오전까지 이 분들이 저희들의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식수를 제공해 줬습니다. 전도사님을 제외한 네 분은 60대이신데도 보기만 해도 웃음을 머금게 하는 매우 유쾌한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일본의 원전반대를 위해 시민운동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평화를 위해 제주도에서 열심히 시위 중인 제주도팀 얘기를 듣자 마자 꼭 만나고 싶다며 전해달라며 강조에 강조를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히가시마츠시마 난영이가 재건하다.jpg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지지난 주에 재건 작업을 했던 히가시 마츠시마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히가시 마츠시마는 저의 경우에 첫 작업지여서 그런지 이제 길들도 눈에 익고 간간이 보이는 주민들과 교통지도를 하는 이름 모를 인부까지 정겨운 곳입니다. 그럼에도 재건 작업은 거의 막노동과 맞먹는 노동량이어서 그런지 아직 쉽지만은 않네요.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오전 8시부터 일하러 나가 저녁 9시쯤에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재건작업이 끝난 후 창고에서 분류해 놓은 옷가지와 생활품을 가지고 주어진 피난소를 맡아 나눠주는 일까지 하였습니다. 정말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물건을 나눠주는 시간은 다시 힘이 났습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손에 들고 해맑게 웃으시는 주민들의 모습에 짙은 어둠이 걷히고 새날이 밝아 오는 기분이었습니다. 배용준 부럽지 않을 한류스타로 인정받기도 했답니다.

 

일본기아대책기구 물류창고.jpg


 

 그리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깔아 놓은 골판지를 다시 모아 피난소 안으로 들어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너진 가옥을 뒤로하고 피난소에서 골판지를 이어 만든 공간에 함께 모여 살아가는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습니다.

 

이제까지 무너진 가옥도, 강에 떠 있는 집과 자동차들에 셔터를 눌러왔지만 주민들이 의지하고 있는 골판지를 덧댄 공간과 그 곳에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내는 모습에는 감히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은 그저 죄스러울 뿐이었습니다.

 

토요일은 휴가를 내어 세탁을 하고 휴대폰의 다 쓴 금액을 충전하기로 했지만 이번 주의 여정과 작업은 여태껏 시간들 중에 가장 힘들어서 그런지 아침 먹고 자고, 점심 먹고 또 자는, 아니 자게 되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쉬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은 화요일에 창고에서 만난 한국인 아주머니의 초대로 센다이교회에 와서 점심을 대접받고 인터넷도 사용하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깐 센다이교회 목사님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지진과 쓰나미, 방사능의 피해보다 보이지 않는 깨어진 관계와 마음의 상처가 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에 돌아가서 전하는 말과 글들에 대한 중요성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편지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더욱 고민이 됩니다.

 

다음 주도 마찬가지로 재건 작업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와 달리 많은 팀들과 사람들이 돌아가서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끼와는 화요일에 센다이 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2년 전에 한국에서 만나긴 했지만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습니다.

 

주민들의 필요에 따라 그리고 기아대책의 프로그램에 따라서 하루하루 하는 일들이 유동적입니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여 피곤하기도 하지만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다음 주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센다이에서 장희가-

 

<기도제목>

난영, 장희

1.     쓰나미와 지진의 피해로 깨어진 관계의 회복과 상처 난 마음을 위해

2.     기아대책의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하루 진행되는 일을 잘 협력할 수 있도록

3.     많은 양의 일이지만 지치지 않고 피곤함을 잘 견딜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