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을 보고 흘렀던 생각들


<지슬>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지슬은 감자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라고 합니다. 제주 4.3 항쟁을 배경으로 부산 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것이라고 합니다. 보는 내내 계속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렸습니다. 아마도 빠르지 않은 흑백 영상이 표현하는 몸짓과 소리 그리고 빛들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뉴스와 영화에서 봤고, 아체의 가까운 지난 역사 속에서 들었던 사건들이 마치 바로 나의 이웃에게 벌어진 일처럼 범벅이 되어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기력이 빠져나가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드러누워 그렇게 한참을 있으니 여러 잔상들이 다시 지나갑니다. 지독하게 소름 끼치는 군인으로 나왔던 한 중사와 할머니의 대화. 몇 살이냐고, 나도 당신 만한 아들이 있다고. 무자비하게 칼로 난도질 당하신 할머니가 조용히 묻습니다. 그러자 군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빨갱이에게 죽어서 자기는 모든 빨갱이를 죽이려고 한다, 그 할머니의 물음에 아무런 양심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한 후 집에 불을 지릅니다. 할머니는  빨갱이가 뭐길래.’ 중얼거리시며, 토벌을 피해 도망친 자식들을 걱정하며 마지막 힘을 다해 감자를 품에 안고 불타십니다. 뒤늦게 어머니를 모시러 온 아들은 어머니 품속에서 구워진 감자를 붙들고 소리 없는 통곡을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죽음들이 계속 됩니다.


국가 폭력, 조직된 폭력, 그리고 개인의 폭력에 의해서 희생되는 셀 수 없이 많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 언니, 동생. 끊이지 않는 이 저주의 사슬이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나 국가 폭력은 스스로를 정당화 하여 폭력을 행하는 것이 옳은 일이 됩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이 폭력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이 폭력이 멈추어지기는 할까요? 적어도 비록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 폭력이 야만이라고, 일어 나서는 안돼는 일이라고 인식 될 수는 있을까요?  아니면 내가 당하지 않았기에 그저 다행이다 생각하며 나와는 관계없는 일로 이 폭력을 계속해서 모른 척 하게 될까요? 그러나 실상은 우리는 그때, 1948년 제주에서 경험했던 그 끔찍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 지고 있다는 소식을 이곳 저곳에서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사실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서글프고 억울한 신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런데도 매일의 나의 삶은 평화로운 공기 안에서 숨쉬고 있어서, 보이지 않는 이웃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누리는 이 평화가 내게 만은 우리에게 만은 계속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이웃의 신음은 점점 가까이 우리의 평화로운 공기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아체는 불과 8년전까지만 해도 젊은 청년들은 빨간 티셔츠와 운동화를 신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두워진 후에는 거리를 나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낮에도 길을 걸을 때에는 언제, 어디에서 무슨 불똥이 튀길지, 불림을 당하고, 얻어 맞지 않을까 한 없이 어깨가 쪼그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루 아침에 남편과 자식이 왜 사라져 버렸는지 알지 못한 채, 시신이라도 찾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이웃으로 살고 있습니다. 8년 전, 20058 15아체의 많은 민중들이 두 손 모아 기도했던 그 평화의 소식은 쪼그렸던 어깨를 펼 수 있게 했고, 이제 밤이 늦도록 거리를 활보 할 수도 있게도 했습니다그러나8년이 지난 지금 아체의 평화는 어디까지 와 있을까요? 평화 협정 때 약속한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아직까지도 구성이 안된 상태입니다. 묻혀져 있고, 무시되고 있는 억울한 외침을 들어 줄 이도, 그래서 그 억울함을 함께 풀어 줄 길에도 여전히 들어 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걸고 독립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위정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함께 피 흘렸던 그리고 피 흘리게 했던 그 민중의 마음을 헤아려야 할 시간입니다너무 많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생명을 걸고 싸웠던 그 용감함으로 이제는 권력자의 자리에서 민중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그들 역시 무력 항쟁을 할때 저질렀던 많은 비 인도주의적인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요아니면 이제는 잃을 것이 너무 많아져 버려 꼭두각시가 되어야만 하는 것 일까요아체의 평화가 진실과 정의 그리고 합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흐르고 있습니다.  과거는 묻혀야 하는 것이고, 지금은 미래를 위해서 뛸 때라고 위정자들은 호소합니다. 그리고 소수의 억울한 외침들은 외면당합니다. 그러나 이 평화의 기운이 억울한 신음에 답하지 않으면, 언젠간 다시 폭력의 악령이 되살아 나 평화의 기운을 집어 삼킬 것입니다. 폭력은 너무 거칠고 소란해서 그 모습이 드러나면 흐르는 강 같은 평화는 쉽게 그 폭력의 기운에 힘을 빼앗깁니다. 그래서 평화는 평화로울때 더욱 지켜져야 합니다. 폭력이 힘을 쓰지 못하도록 그 씨앗들을 찾아 내어 제거해야 합니다. 그 씨앗들이 자라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 것은 한 사회 안에서도 개인 안에서도 행해져야 합니다그 일을 위해서 아체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8년 전 평화 협정 때의 약속했던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속히 조직되어 억울한 이들의 신음을 풀어 주는 것이고, 억울한 피해자 가족들의 바램처럼(Koalisi HAM Aceh) 30년 동안에 일어 났던 분쟁에 대해서도 사실적인 서술을 역사 교과서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네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그를 살인하는 것이라고 했는지, 그것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살인은 미움에서 비롯됩니다. 미움은 화를 일으킵니다. 화는 내면으로든, 외면으로든 폭력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선 한 없이 너그러워 질 수 있습니다. 똑 같은 실수를 해도 사랑하는 이가 하는 것과 호감 가지 않은 이가 행한 것에 우리의 반응은 본능적으로 다름니다. 왜 우리는 누군가에게 더 호감이 가거나 더 사랑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관계라는 것이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고 우리에게 잘하고, 내 마음에 호감이 가는 이에게만 관대해진다면 이 세상은 정말 불공평 할 것 같습니다. 기준이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인에게나 악인에게 공평하게 비를 내리십니다. 그분은 타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 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으니 우리는 마음 수련을 열심히 할 수 밖에요. 나로 인해 억울한 사람들이 없도록, 내 마음에 화의 씨앗들이 자라지 않도록 말입니다. 권위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무시를 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마음이 바로 상하는 것, 넉넉한 것처럼 평상시에는 내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잘도 나누지만 그것이 적당한 보답으로 표현되지 않으면(감사하다는 말이나, 비슷한 행동) 마음에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 등은 존중 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부유한 마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부유한 마음들이 상황만 주어진다면 자신을 정당화 시키며,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드는 일에 동참하도록 만들겠지요.


<지슬>은 너무나 가슴 아픈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폭력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저주스러운 폭력을 멈춘다는 것이 너무나 아득해 보이지만 먼저는 내 안에 폭력의 씨앗이 자라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산들바람(Angin Sepoi-sepoi) 2013 9

아체에서 유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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