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한 어리석음으로 복 주시기를

3R과 평화(平和)

 

아체 공동체 식구들과 나눴던 9월의 생각 나눔주제는 평화(平和)였습니다. 우리 주위에 너무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긴 하지만 막 새로운 식구가 된 친구들이 4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평화에 대한 생각을 알고도 싶었고, 공동체가 말하는 평화의 방향도 함께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먼저 평화하면 어떤 것들이 연상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모두들 단어들을 던졌습니다. 두려움이 없음, 전쟁, 안전, 배고픔, 행복한 삶 등. 그런 후에 하얀 백지 위에 어떤 때에 가장 평화로움을 느꼈었는지, 어떤 때에 가장 평화스럽지 않았었는지, 그때를 생각하며 떠오르는 것들을 그림으로든 글자로든 아니면 색깔로든 표현해 보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진지하게 숙고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유모차, 봉고차, 자전거, 하늘, 붉은 소용돌이, 해먹(hammock), 짙은 날짜, 얽힌 실타래 속의 길, 검은색, . 그렇게 표현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들려주었습니다. 봉고차를 그린 이유는 명절이 되면 그림 속의 봉고차를 타고 고향을 가야 하는데, 그 시간이 정말 불안하다고 합니다. 많은 가족들이 만나는 기쁜 시간이 언제나 다툼으로 얼룩이 지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고요. 크게 적은 날짜는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라고 합니다. 날짜를 또렷이 말하는 친구의 슬픔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현재가 가장 불안한데, 그것은 미래를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친구는 조직 안에서 조직의 생각에 동의 할 수 없었던 때가 가장 마음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평화로웠던 때를 나눌 때는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동화책을 읽어 주시던 아버지, 자전거를 태워 주시던 아버지, 아윤(ayun, 그네)을 밀어주시던 어머니의 기억, 그리고 산행을 하거나, 낚시를 할 때, 생각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동료와 공간이 확보된 그때가 가장 평화스러운 시간이었다는 나눔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평화는 우리의 일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불화 역시 우리의 일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사회적인 차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누구든 평화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것을 보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만큼 평화를 누리며 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평화(平和)를 한자로 해석하면 공평하게 밥을 나누어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평화로운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 안에 있는 언어인 것 같습니다. 만약 한 쪽에 밥이 나눠지지 않는다면 평화가 깨어집니다.

 

3R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각자가 맡은 일은 달라도 삶의 질은 모든 구성원이 비슷하게 누리며. 서로를 책임지는 관계로 얽혀 갑니다. 그리고 그 책임의 관계를 공동체 안에서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이웃들과 멀리 있는 이웃들에게까지 넓혀가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의 폭의 넓어짐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평화 감수성의 개발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평화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평화 교육, 평화 캠프, 아트 캠프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고요. 누구에게나 평화 감수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평화를 바라니까요. 그렇지만 나의 평화가 너의 평화와 관계가 있고, 너와 내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서로가 어떤 부분에서는 양보하고, 희생하는 노력으로 구체화 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고민하는 노력들이 쌓이면서 평화 감수성도 깊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는 보통사람들이 종족이나, 종교나, 이념이라는 이슈로 누군가 도발을 하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은 한 쪽으로 치우쳐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거침없이 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쉽게 내 편과 네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지, 얼마나 쉽게 내 편이 아닌 자를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지를 보여 주는 실례입니다. 인도네시아에도 그러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1965 66년 사이 50만에서 많게는 300만의 PKI(공산주의자)당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군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웃들에 의해서입니다. 나치에 의해 600만의 유대인들과 600만의 사람들이 연약하다는 이유로 학살 당했고, 유대인들에 의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에서도 르완다에서도 어제 이웃이었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원수가 되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살을 당합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학살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우리로써는 이해가 안되지만 우리 안에도 그러한 잔인의 씨앗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것들에 대해서 용납하고 이해하려는 마음 보다는 쉽게, 불편해 지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불이익을 당하거나 모욕을 당하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쉽게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타인의 억울한 울부짖음에는 너무나 무딘 사람들입니다. 이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부족합니다. 주위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을 얻기 위한 노력 또한 부족합니다. 우리가 이러하다면, 주위의 다수가, 나와 같은 편이라고 하는 다수가 하면 나 또한 그 일에 동참 하지 않겠습니까? 같이 하는 그 일은 곧 자신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종교가 우리를 지켜 주지 않습니다. 도리어 많은 분쟁의 원인이 종교인 경우가 많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두기 보다는 종교 지도자들이나 종교의 관습에 마음을 둠으로 정말 신이 원하는 것, 마음의 평화를 지키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해야 하고, 비판적인 시각과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 씨름해야 합니다. 3R의 평화 교육은 자신을 이해하고 돌아보는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우리 주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 주 목표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함께 평화를 배워가며, 평화의 잔치를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로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어리석음으로 복 주시기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른 이들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해낼 수 있기를.

아멘.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의 4중 축복 중에서-

 

산들바람(Angin Sepoi-sepoi) 2013 10

아체에서 유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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