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다

2011.11.21 16:06

영희 조회 수:13943

지역 초등학교에서 매주 평화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2주 전, 3학년 아이들과의 수업 중에 있었던 한 남자 아이의 모습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쉬이 잠잠해지지 않은 잔물결을 일으켰고 지금도 하늘 기운으로 저를 사로잡곤 합니다. 순간 번쩍이는 머리속의 어떤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저의 전 존재를 사로잡아 하늘의 기운을 맛보게 해 주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그 하늘 기운을 느껴볼때면 금새 마음에 환한 빛이 비춰오고 가슴이 뭉클해져 옵니다.

 

2주전 3학년 교실.

갈등상황에서 필요한 신호등에 대해 아이들과 나누었습니다. 교통질서와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도로위의 신호등 뿐만 아니라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갈등상황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도 빨강, 노랑, 초록의 신호등이 필요하다는 것.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그 순간 "일단 멈춰!" 빨강 신호등을 켜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엇을 보았고 들었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살핍니다. 그 다음 "생각해봐!" 노랑 신호등을 켜고 그 상황에서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 즉 욕구가 무엇인지를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이제 이야기 해봐!" 초록 신호등을 켜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상대에게 상황과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직접 이야기 하듯 말해 보는 것입니다.

역할 극을 통해 이러한 신호등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작동되어지는지 이해를 도운 후 아이들에게 활동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갈등 상황을 적은 후 그에 따른 "일단멈춤", "생각해봐", "이제 이야기 해봐" 에 따라 내용을 채우고 한 사람씩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씩씩하게, 어색해 하며, 수줍어 하기도 하며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의 이야기를 모두 앞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교실에서 가장 개구쟁이인 듯 하고 그 개구짐이 다른 친구들에게까지도 영향을 줄 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남자 아이의 발표 시간. '영혼을 베는 궁극의 기술 아만타디움 여진영'이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한껏 머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발표하는 내용이 잘 정리가 되지 않을만큼 조금 엉뚱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랑스런 '영혼을 베는 궁극의 기술 아만타디움 여진영'은 부끄러운 기색은 하나도 없이 아주 씩씩하고 티없이 밝고 환한 웃음을 한껏 발산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에 절로 웃음이 찾아들었고 진영이의 그 때묻지 않은 마음,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은 그 순간 저를 사로잡아 '천국'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좁쌀 한알' 장일순 선생님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심중무물(心中無物).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마음속에 든 것이 있으면 편안하지 않다.

      그것이 부끄러움일 때는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면 뭐하고, 부자면 뭐하랴. 가슴에 뭘 두고는 행복하지 않은 걸!..'

 

심중무물(心中無物).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기에 잘 정리되지 않은 엉뚱한 내용으로 발표를 하고도 그처럼 부끄러운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고 티없이 밝고 환한 웃음을 한껏 발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 진영이를 통해 느꼈던 그 밝음과 기쁨, 자유함은 실로 가슴 벅차고 뭉클했습니다. 그 아이의 비워진 마음은 참으로 깨끗하고 맑았습니다. 빈 마음이었기에 자신은 물론 그 마음에 깃드는 모든 존재가 쉼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빈 마음이었기에 한 순간을 살아도 진정 사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 천국이다!..' 그토록 목마르고 갈급한 하나님 나라를 이 작은 벗을 통해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 없을 것이다'고 했던 예수님의 말씀이 제 눈 앞에 그렇게 살아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심중무물(心中無物)'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는 그것. 그 비워진 마음. 그래서 그토록 편안한 그것. 부끄러움일 때는 더욱 그러한 그것. 이 하늘의 신비와 기운이 나를 사로잡아 주기를. 그렇게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기를. 그 기운을 흘려보낼 수 있기를...두손 모아봅니다. 무엇보다 이렇듯 나를 이끌어주는 생명의 빛인 작은 벗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작은 벗들에게서 살아숨쉬고 있는 그 생명의 빛을 지켜줄 수 있는 나와 너가, 우리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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