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일 금주의 세계

2014.03.03 13:45

개척자들 조회 수:576

<2014. 3. 3 금세>

1.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다시 검증하겠다고 공식 발표해 국제사회 큰 반발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2. 나이지리아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보코 하람 25일 북동부 지역의 한 기숙형 공립 고등학교를 급습해 학교 안팎에 불을 지르고 무차별 총격을 퍼부어 적어도 4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3. 좀 더 민주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주자의 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의 인권과 권리 확장에 사회 구성원들이 나서야 합니다.

4.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의자 유우성(34)씨는 지난해 8월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뒤에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1.일 정부 고도 담화 검증팀 만들겠다”… -일 관계 격랑’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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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한-일 관계의 마지막 안전판 구실을 하던 ‘고노 담화’에 대한 전면적인 검증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최근 검증 국면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이시하라 노부오 전 관방 부장관의 20일 증언을 △위안부가 강제동원 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는 찾지 못했다 △담화의 근거가 된 16명의 한국인 위안부 여성의 증언에 대한 검증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협의를 통해 문언을 확정했다 등으로 정리해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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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자료와 관련된 내용은 아베 1차 내각 때인 2007 3월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하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내용을 내각회의에서 결정했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어떻게 조정했는지를 확실히 검증할 것이다. 16명의 증언도 확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라 위안부 여성의 증언 내용을 정부가 비공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스가 장관은 검증 결과 국회 보고와 관련해서도 “정부로서 그럴 의사가 있다. 그러나 위원회에서 정해주길 바란다”며 사실상 공개 의사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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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강경 방침은 일본에서도 적잖은 반발을 불러올 전망입니다. 고노 담화에 손을 대는 순간 한국 정부는 물론 이 문제를 인권문제로 파악하는 미국 정부와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역시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인을 자극하는 것 외에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며 발표한 ‘무라야마 담화’도 변경해서는 안 되는 국제적 약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도제목:

역사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며 자신들의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길이 올바른 일임을 깨달아, 일본 정부가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죄할 수 있도록.

 

2. 이슬람 무장단체, 나이지리아 고교생 40여명 살해(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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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뱅가드> 등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50여명의 중무장한 보코 하람 조직원이 요베주 주도 다마투루 외곽에 자리한 부니 야디 고등학교에 들이닥친 때는 25일 새벽 130분께입니다. 이들은 남학생과 여학생을 따로 교실로 모은 뒤, 남학생들이 있는 교실에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들은 이어 학생 기숙사와 교직원용 건물 등 학교 건물 전체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학생과 교직원에게 총질을 해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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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 통신은 현지 경찰 관계자의 말을 따산 채로 불길에 휩싸인 일부 희생자의 주검은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테러범들은 학교 인근에 자리한 주택과 공공기관 청사 등에도 불을 지르고 통신시설까지 파괴했습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희생자는 모두 남학생이며, 테러범들이 여학생한테는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지만, <뱅가드>테러범들이 여학생 16명을 납치해갔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사건을 포함해 요베주 일대에선 지난 8개월 동안 보코 하람이 모두 네차례나 학교를 겨냥해 비슷한 사건을 벌였습니다. 이 때문에 부니 야디 고등학교 부근에도 군 검문초소가 설치됐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사건 발생 24시간 전에 군이 병력을 철수시킨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나이지리아 군·경은 이날 보코 하람 조직원들이 모두 사라진 뒤에야 사건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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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이 지역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모여 만든 이 단체의 이름은 하우사 부족어보코’(영어책·서구식 교육)와 아랍어하람’(·금기)을 합성해 만들어졌습니다. 서구식 교육을 죄악으로 규정한 것인데, 이 단체가 나이지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겠다며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선 때는 2009년 중반께입니다. 보코 하람의 유혈극이 극심해지자 굿럭 조너선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지난해 5월부터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디언>정부군의 공세는 되레 민간인을 겨냥한 보복공격만 부추겨, 이달 들어서만 보코 하람의 유혈극에 따른 사망자가 300명을 넘어섰다고 전했습니다.출처: [한겨레21]

기도제목:

분노와 극단으로 치우쳐 어린 생명들까지도 무참히 살해하는 보코하람의 유혈극이 중단되고, 나이지리아 정부가 반복되는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다시는 이 가슴 아픈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3. 이주자의 권리가 왜 우리의 문제일까(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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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출신인 라이(가명) 23년 전 한국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던 시절,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돕고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안고 한국에 온 1세대 외국인 이주노동자입니다. 오물이 뒤범벅된 돼지막사에서 하루 스물 두 시간을 일하며 젊은 패기로 버티기도 했던 라이는 현재 경기도의 한 가구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2년간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살아온 그의 몸은 페인트를 벗겨내는데 쓰이는 화학물이 파고들어 병들었지만 고달픈 삶 속에서도 사랑은 싹텄고 한국에서 만난 몽골 여성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과 아들이 몽골에 살며 아빠와 함께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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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수많은 라이가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다가가 똑같은 인격체로 이해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경제를 꾸려가는 동반자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다수 한국인의 의식 속에 이주자는못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국의 다문화 담론은 핵심에서 한참 벗어났습니다. 이주 국가의 불안을 관리하는 제도로 등장하면서 먼저 살고 있던선주민교육이나 의식화에는 무관심했습니다. 최초의 정착형 이주자인 결혼이주자를 한국 가족과 사회 내에 편입시키기 위해 빠른 동화를 통한 한국화라는 목적에 얽매이다 보니 다문화주의 논의는다문화 가족정책으로 환원되었고 여전히 정체돼 있습니다. 이 같은 정책은 다문화 가족 전체를 취약계층과 동일시하면서 영구적인 주변부 계급으로 고착화하는 문화적 폭력까지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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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문제는 국제적 기준도 없고 전 세계 이주자의 인권을 감시하는 국제기구도 없습니다. 이주자의 권리 확장은 제도나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주자와 선주민의 성찰과 윤리의 영역에서 이뤄집니다. 한국이 좀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주자의 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의 인권과 권리 확장에 구성원들이 나서야 합니다. 이주자의 거주권과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경험을 좀 더 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확장한다는 믿음에서입니다.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2211959325&code=960205

 

기도제목:

이주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 착취와 편견에서 돌아서고, 이주 노동자의 통제에 목적을 둔 이주정책 및 제도가 개선되며, 이들의 인권과 인간다운 삶이 존중되고 실현되는 사회가 되도록.

 

4. 유우성·유가려 남매 이야기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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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피의자 유우성(34)씨는 지난해 8월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난 뒤에도 후유증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유우성씨는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나고 자란 재북 화교로, 2004 3월 북한을 나와 중국-라오스-베트남-타이를 거쳐 한달 만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고생 끝에 2007년 연세대학교 중문학과에 편입했고 2011 6월 서울시청 복지정책과 생활보장 팀 계약직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자 동생 유가려(27)씨를 데려오고 싶어서 평소 자신과 연락하고 지내던 국정원 관계자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동생을 한국에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니까 '한국에 데려오면 잘 도와주겠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데려온 건데 마치 제가 북한 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데려온 것처럼 국정원과 검찰은 주장했어요.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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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국정원을 믿었고, 2012 1030일 동생을 제주공항을 통해 입국시켰습니다. 국정원에 자진 신고했습니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경기도 합동신문센터(탈북자 신원 등을 확인하는 기관)에서 동생이 몇 개월 머물다 조사가 끝나면 곧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동생은 풀려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013 110일 아침 국정원 수사관들이 유우성씨의 아파트에 들이닥쳤고,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서울구치소에 입감됐습니다. 국정원은 동생 유가려씨가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지만, 유가려씨는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했다'며 기존 진술을 뒤집었습니다. 국정원 수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검찰 공소장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도 여럿 확인됐습니다. 결국 서울중앙지법 형사21(재판장 이범균)는 지난해 822일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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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끝나는 듯했던 이 사건에 검찰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했습니다. 검찰이 제출한 자료에는 유씨가 2006 527일 중국 용정시를 통해 북한 회령시에서 나온 뒤 한 시간도 안 돼 다시 북으로 들어갔다 나온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유씨는 이 출입경기록이 가짜라고 확신하고, 연길로 돌아간 동생에게 위임장을 보내 자신의 출입경기록을 발급받아 오게 했습니다. 결과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기록과 달랐고, 중국 정부는 한국 재판부에 공문을 보내 '한국 검찰이 제출한 3건의 문서는 모두 위조'라고 통보했습니다. 간첩사건이 간첩조작사건으로 국면이 바뀌었습니다. 유씨는 검찰의 수사과정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결과를 미리 만들어놓고 수사를 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제가 간첩이 아니라는 진술을 하는 사람들의 말은 모두 무시하고, 저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악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진술만 검찰은 받아들였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26349.html

 

기도제목:

유씨 남매의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고, 국정원에 의해 사건이 조작되고 진실이 은폐되며, 여론이 조장됨으로써 국가의 중요한 사안이 결정되는 현실을 자각하며 늘 깨어있는 우리가 되도록.


이 땅의 Christian들이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요청에 응답하며 고통 당하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