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30일 금주의 세계

2016.05.30 19:32

개척자들 조회 수:190

20160530 금주의 세계

 

1.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을 찾아,‘원폭돔’ 앞에 섰습니다.

2. 가자지구 지척의 이스라엘 마을에 이 지역 주민이 그려 넣었다는 이 벽화엔 영어와 히브리어, 아랍어로 '평화'라는 단어가 박혀 있습니다.

3. 서대문형무소 앞, 지금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현장인 무악 2구역은 감옥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형성된 마을입니다.

 

 

1. '원폭돔' 앞에 선 미국 대통령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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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전 구름 한 점 없는 아침에 하늘에서 죽음이 떨어져내렸다. 세상이 바뀌었다. 섬광과 불의 장벽이 도시를 파괴했다. 우리가 히로시마에 온 것은 멀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끔찍한 군사행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고 죽은 이들을 애도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영혼이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떻게 변할지 찬찬히 살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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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945 8월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무너진 옛 히로시마물산진열관이 바라다보이는 위령비를 찾았습니다. ‘원폭돔’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핵무기의 참혹성을 알리는 상징이 되어 왔습니다. 오바마는 희생자들을 위해 헌화한 뒤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연설을 했습니다. 원폭 투하 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히로시마를 찾은 그는 연설에서 “우리는 두려움의 논리를 떠날 용기를 가져야 하며, 그것들(핵무기)이 없는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천명한 ‘핵무기 없는 세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입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은 동맹관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우정을 키워왔다”면서 ‘적에서 동맹으로’ 바뀐 미·일관계를 거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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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미국의 원폭 투하에 대해 사죄하지 않았지만 그가 원폭돔 앞에 선 것 자체를 일본인들은 ‘미국이 사실상 사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위령비 앞에 서서 헌화하는 모습은 ‘역사적’인 동시에 ‘정치적’이었다. 히로시마에 찾아가 꽃을 바침으로써 오바마는 미·일 사이에 남아 있던 역사의 오랜 매듭을 풀었고, 그의 히로시마 방문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자신의 이상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집권 마지막 해의 특별 이벤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아베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많습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27일 “히로시마는 주목받을 가치가 있으나 난징(대학살)을 잊는 것은 더욱 안된다”며 “가해자는 영원히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고 못박았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72327005&code=970203

 

기도제목: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과오를 반성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임을 자각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고, 정책결정자들이 이에 따르는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그리고 군사기지를 확대하고 전쟁의 위협을 높이는 행동들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도록.

 


2. '샬롬' 오기를… 가자지구 지척의 이스라엘 마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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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에 낮은 건물들이 보입니까? 바로 가자지구 주택가입니다." 28(현지시간) 오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경계를 맞댄 이스라엘 서남부 집단농장 네티브 하아사라에서 한 초병이 200m 너머를 가리켰습니다. 햇빛이 쨍한 날씨에 모래 먼지로 희뿌옇 긴 했지만 집 수십 채가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 보였습니다. 불과 2년 전인 20147'50일 전쟁' 때 가자지구를 통제하는 무장정파 하마스가 북쪽으로 쏜 로켓포와 남하하는 이스라엘군 전투기가 머리 위로 교차하던 곳입니다. 지금은 분쟁의 현장을 보려는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안전하다지만 정적 속에 긴장이 뒤섞였습니다. 총을 들고 가자지구를 응시하는 이스라엘 병사와, 그가 서 있는 초소 벽면의 그림 속 나비의 대조는 이런 묘한 기분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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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주민이 그려 넣었다는 이 벽화엔 영어와 히브리어, 아랍어로 '평화'라는 단어가 박혀있었습니. 가자지구와 가장 가까운 이 집단농장에 사는 농부 힐라 펜론(38·) 씨는 지난 15년간 두 자녀를 데리고 밤마다 집안 피난소에서 잠들어야 했습니다. "하루에 스무 번이나 피난소로 달려간 적도 있어요." 지금은 언제 로켓포가 날아들지 모르지만 그에게 가자지구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 남은 곳이기도 합니다. 펜론 씨는 "가자지구는 부모님과 나들이 가던 옆 동네"라고 기억했습니다. "그곳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후무스(콩을 삶아 으깬 아랍식 소스)를 팔지요." 펜론 씨는 "(분리장벽) 뒤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평화를 원한다는 걸 안다"면서 "반드시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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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경계선 주변의 정착촌, 집단농장 등 유대인 마을은 모두 66곳으로, 인구는 약 5만 명입니다. 이 중 21곳은 펜론 씨가 사는 곳처럼 경계선 4㎞ 이내 지척에 있다. 이스라엘군 측은 "이들이 이사하지 않는 이유는 언젠가 평화가 올 것이란 희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군사 대치 속에서도 집단농장 옆 분리장벽엔 평화를 소원하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50대 이스라엘 여성 주민이 4년 전부터 인도네시아, 팔레스타인의 무슬림들과 함께 만든 공예품을 이 벽에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공예품엔 한결같이 '피스'(영어), '샬롬'(히브리어), '살람'(아랍어)이라는 단어가 새겨졌습니다. 모두 '평화'라는 뜻의 단어 입니다. 600m 정도 이어진 벽 가운데 현재 50m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공예품 수천 개로 채워졌습니다. 분리장벽 벽면엔 '살람'이라는 글자가 가자지구에서도 볼 수 있도록 크게 적혀 있기도 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8436262

 

기도제목: 가자지구에 전쟁의 기운과 서로에 대한 증오가 잠시만 멈춰도 평화를 그리고, 노래하며, 소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평화를 외치 듯 지역 주민과 더 많은 세계 시민들이 하나되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힘을 모으고 지지할 수 있도록

 


3. ‘옥바라지 골목’과 지역의 이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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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앞, 지금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현장인 무악 2구역은 감옥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형성된 마을입니다. 종로구청은 이 마을의 골목 하나를 특정해 ‘옥바라지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애초에 부적절한 작명이었습니다.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 대다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감옥과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옥바라지하는 사람들은 이 마을 여인숙이나 민가의 방을 빌려 거처하면서 죽밥 지을 쌀도, 수감자에게 입힐 겨울 누비옷도, 출소하는 가족 친지에게 먹일 두부도, 다 이 동네에서 구했습니다. 그러니 ‘옥바라지 골목’이 아니라 ‘옥바라지 마을’이라 했어야 옳았습니다. 통곡하는 사형수의 아내를 위로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출소한 독립운동가에게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했던 온정의 자취는 마을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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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일 역사 3단체가 성명서를 통해 밝힌 대로, 이 마을은 사회로부터 저항을 고립시키려 했던 당대 권력의 의도에 반해 수감자와 사회를 연결하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정당한 저항을 뒷바라지해온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 골목 하나에 ‘옥바라지 골목’이라는 이름을 붙인 종로구청이나 그 상위 기관인 서울시는 옥바라지와 관련한 사적(事蹟)들을 조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재개발 찬성 측과 반대 측은 서로 옥바라지 골목이 여기니 저기니 하며 다투었고, 종로구청은 자기들이 붙인 안내판조차 철거해 버렸습니다. 뒤이어 재개발조합은 서울시의 충분한 조사를 위한 철거 유예 요청을 묵살하고 철거를 강행했습니다. 지금은 이 마을에 건물 세 채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도 최종 철거 직전 시장이 직접 “내가 손해배상 당해도 좋다”며 철거를 중단시킨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는 ‘합의 없는 철거’를 중단시킨 것이지 ‘옥바라지 골목 보존’을 약속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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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악 2구역에서는 여러 갈래의 욕망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는 조합원들의 욕망, 옥바라지와 관련된 사적과 기억들을 공공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려는 욕망, 가급적 많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견해든 수용할 태세를 갖춘 일부 주민의 욕망. 물론 이들 중 가장 현실성 있는 욕망은 조합원들의 욕망입니다. 같은 종류의 문화유산이라도 남의 동네에 있으면 소중한 문화재, 내 동네에 있으면 발전의 장애물로 취급하는 건 현대 한국의 보편적 문화입니다. ‘개발 이익을 얻을 권리’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으나 ‘문화유산을 향유할 권리’는 개념조차 없습니다. 어떤 지역의 변화 발전 방향을 두고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들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여러 이익들 중 ‘지주들의 개발 이익’만이 ‘지역의 이익’을 과잉 대표한다는 점입니다. 재개발로 인해 오랜 연고지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 그 지역에 삶의 일부를 담고 문화를 향유해온 사람들의 사회적 문화적 이익은 고려 대상조차 못 됩니다. 지주들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지역의 변화가 공공의 관점에서도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재산권 이외의 권리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출처: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62047005&code=990100

 

기도제목: 무기력하게 주민이 쫓겨나는 자본 중심의 재개발이 아닌, 주민과 함께 하는 도시 재생 사업으로의 방향전환을 통해 ‘옥바라지 골목’과 그 역사성이 보존되고, 우리 사회에서 재개발로 인해 오랜 연고지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 그 지역에 삶의 일부를 담고 문화를 향유해온 사람들의 사회적 문화적 이익이 고려되는 권리와 가치가 존중 받는 사회가 되도록


이 땅의 Christian들이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요청에 응답하며 고통 당하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기도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