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의 창간 두 돌을 회상하는 오석준 편집국장의 18일과 칼럼을 읽으며 “20년 같은 2년”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실을 보도하기 위한 제주도민일보 기자들의 힘겹고도 피곤했던 시간들을 말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건설 반대활동을 하다가 현재 구속 수감 중입니다. 그리고 이곳 제주 교도소에서도 제주도민일보를 정기 구독하고 있는 애독자이기도 합니다. 제가 교도소에 와서까지 본지를 구독하는 이유는 이 신문만이 해군기지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강정주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유일한 도내의 종이신문이기 때문입니다. 늦었지만 진심으로 본지의 창간 두 돌을 축하 드리며 앞으로도 어둠 속에서 고난을 당하는 시민들의 눈물자국이 묻어나고 땀냄새가 배어나는 신문으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주도를 사랑해서 제주도를 찾아온 육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저의 제주 사랑은 거짓에 속은 사랑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주도가 특별자치도요, 평화의 섬이라는 거짓말이었습니다. 2005년 저는 쯔나미로 14만 명이 한 순간에 갑자기 몰살당한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의 고아들과 독거노인을 위한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당시 반다아체는 2차 대전 종전 이후부터 계속 독립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60년 동안의 지루한 게릴라 전쟁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아체 주민들에게 평화는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제가 아체에 머물고 있던 시절, 아체는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평화협정체결이 임박했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떠 있었습니다. 산악 속에 숨어 지내던 게릴라들이 반납한 총들을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절단을 했고, 게릴라들은 반평생 떠나 살았던 자기 고향에 관광버스를 타고 낯선 이방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분쟁과 살상으로 점철되었던 아체 주민들의 모든 동경과 희망은 평화라는 한마디 말 속에 전부 응축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체의 봄’의 온기 속에서 멀리 우리 조국으로부터 들려오는 평화의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 제주도, 3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에 의해 희생된 이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다는 가슴 설레는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돌아가면 반드시 제주도를 찾아가리라 결심했고 결국 제주도에 와서 도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내가 기대하고 동경했던 평화의 섬이 아니었습니다. 강정마을에서는 누가 적인지도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도 없는 미지의 대상을 적으로 상정한 채 주민들의 땅과 바다를 강제로 빼앗아 거대한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섬”은 “평화와 번영의 섬”이라는 모호한 물타기로 희석되어 있었고, 한 때 평화의 섬은 비무장이어야 한다고 선언했었던 학자들이 이제는 평화의 섬과 해군의 군사기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 놓았습니다. 신념이 없는 학자들은 시류에 편승하고 철학이 없는 정치가들은 권력자들에게 휘둘리는 법입니다. 제주도는 이런 학자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이들의 비틀거리는 행보를 방조하는 법관들에 의해 표류하는 섬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암울한 현실 속에서 지난 달 8일 “해군기지 대안은 무엇인가?” 라는 토론회에서 신용인, 고창훈, 양길현 제주대 교수와 고제량 씨의 제언은 그래도 희망을 주는 지성들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분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는 “평화와 자연”이 제주도의 절대적 가치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안보 논리에 의해 이 소중한 가치들을 묵살시켜 버린 오늘의 제주도는 어두운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진언과 바른 주장들이 제주도에서 변방의 북소리가 되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저는 지난 10여년동안 국제적인 평화활동 단체를 이끌어 가면서 지도력이란, 바른 판단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전망 그리고 인화단결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근민 도지사에게서 이 모든 능력이 결여된 총체적인 지도력의 부재를 보게 됩니다. 제주도가 해군기지를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은 바른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해군기지는 제주도민을 위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근민 도지사는 제주특별자치도를 다시 대한민국 정부와 군부에게 종속시키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섬을 적의 표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아름다운 절대보존지역, 천연기념물을 다 부서뜨리고, 그 위에 시멘트 콘크리트를 부어버리는 그릇된 결정을 내렸습니다. 돈이 될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붙잡으려 드는 제주도정의 근시안적인 정책은 신용인 교수가 지적했듯이 비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 경전에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듯이 이것이 제주도민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의원은 제주도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제주도를 하와이와 같은 섬으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하와이는 제주도의 바른 미래 비전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이런 거짓된 허상(illusion)을 진정한 환상(vision)인양 신기루처럼 따르다가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공동체를 파괴시켜왔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4대강 사업과 원전건설들로 인한 주민들의 불안과 고통과 분노는 현재 진행중인 파멸의 이야기들입니다.
제주도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도민들과 정부와 도정과 기업들이 모두 둘러 앉아 대화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시 ‘소통의 문’을 여는 것이지요. 해군은 국가 안보를 위해서 작은 마을 하나쯤은 희생양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애국’으로 포장된 사악한 신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강정마을 주민들도 지금까지 당한 억울한 감정들과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삼성과 대림도 물욕과 이익을 넘어서서 기업의 사회적 기여라는 차원을 신중히 고려하여 공사를 일단 중단하고 대화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근민 도지사는 비겁하게 중앙의 권력자들과 선거권을 가진 주민들 사이에서 눈치만 보지 말고 제주도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줄 진정한 도민의 대표로 다시 서서 도민들을 근심스럽게 만드는 어리석은 지도자라는 오명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경찰과 법관들은 작은 마을 강정에서만 이미 600명이 넘는 시민을 체포, 연행했고 300명 이상을 처벌했습니다. 지금도 수십 명이 재판에 계류 중입니다. 무고한 시민들을 투옥시키고 벌금을 물리는 길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다시 대화의 자리로 돌아와 우리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같이 갈 새롭고도 바른 길을 찾아 나가기 위한 대화를 시작합시다. 이미 늦었다고 고집부리지 맙시다. 만일 지금 돌아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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