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께서 연로해지셔서 4년 전에 저희가 사는 샘터에 오셔 함께 살게 되셨습니다.
오신 다음 처음에는 조금씩 걸으시며 뒤뜰에 있는 된장독도 돌아보시고 산책도 하셨지만
점차 더 약해지셔서 작년 봄 침상에 드신 이후에는 다시 걷지 못하셨습니다.
지난 주말부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셔서 오늘 새벽 6시경 마침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아쉬움과 송구함이 남습니다.
그 동안 파킨슨병으로 힘들고 아프셨는데 이제는 평안히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돕고 보살피시며 살아오셨습니다.
이제 그 고단한 삶을 마치시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빈소는 명일동에 위치한 강동 경희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입니다.
 
2011년 1월 26일
조정래, 송강호 올림
 
 
강동 경희대학교 병원(구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149
장례식장(12호, 고 민태희) 02 440 8800
5호서(상일동행)
고덕역4번출구 ⇒ 이마트4거리 ⇒ 신호등 건너 ⇒ 오른쪽 100m거리
 

 


아름다움에 대하여
-소정희


아름답다는 것을
목욕탕에서 만난 어느 할머니의
앙상한 발에서 느낀 적이 있다
한쪽 팔이 마비된 할머니의 발
하얀 살결에
검푸르게 뻗은 핏줄이
늦가을 서리 맞은 풀밭,
벌레가 파먹은 나뭇잎 한 잎처럼
실핏줄 터져 버린 삶의 훈장같이 느껴져
진실로 발 쪽을 얼굴로 생각해서
입맞춤해드리고 싶었다
뽀얀 젖가슴 사이로
아이의 웃음이 흐르는 듯해서
할머니 등에 내 손을 얹고
쓰다듬듯이
아이의 얼굴을 씻겨주듯이
살살 문질러 드렸다

 
작고 가지런한
꽃송이 같은 할머니의 발
실상은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인가
어느 삶 자락에서 뼈마디가 눅진해진
인생이 몽땅 진이 되어
고추 대처럼 말라버린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이신

 

 

작년 여름에 미국에 가기 전에 할머니는 나의 손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아기 참새처럼 샘터 건물 꼬부랑 길을 따라 산책을 하셨었다. 기운이 좋으실 때는 샘터의 다리를 건너 할아버지께서 옮겨 심은 내 무릎까지도 키가 닿지 않는 애기 잣나무가 잘 자라는 지 살피는 것이 할머니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마다 할머니 방에서 작은 탁자 위에 그릇을 올려 놓고 마주보고 앉아 식사를 하는 것도 나에게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렇게 할머니께서는 샘터의 할머니로 우리에게 다가오셨다. 그런데 미국에서 할머니께서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들린다 해도 바다 건너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멀게만 또 흐릿하게만 전해졌다. 그리고 다시 여름.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름의 무더위와 습기가 한 창인 날 샘터로 돌아와 내가 만난 할머니는 여전히 샘터의 할머니였다. 그런데 할머니는 더 작고 하얘진 모습으로 이제는 앉아서가 아닌 누워서 나를 맞이 하셨다. 고맙게도 할머니께서는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디에 갔다가 왜 이제 왔냐고 하셨다. 내 손 한 줌에 잡히고도 공간이 많이 남은 할머니의 더 가녀려진 손목을 감싸고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누워 계시며 봄을 나고 또 여름을 나셨다. 그리고 샘터의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곧 겨울이 올 테다.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그렇게 누워계신다. 종이 울린다. 할머니가 뭔가 도움이 필요하시다는 이야기다. 목이 마르다고 하신다. 다리가 아프다고 하신다. 옆으로 돌아 눕고 싶으시단다. 라디오 소리가 작으시단다. 배가 고프시단다. 한별엄마가 어디 있냐고 하신다. 창문을 열어 달라 하신다. 기저귀를 갈아 달라고 하신다. 할머니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종을 치는 것과 입에 묻은 뭔가를 접고 접혀져 누가 봐도 종이를 아끼려는 흔적이 역력히 보이는 휴지 한쪽으로 닦으시는 일 그리고 가만히 누워서 라디오를 들으며 잠이 드는 일, 그리고 그 누군가가 지나가다 할머니가 하루 종일 누워계신 방에 행여라도 들려 인사를 전할까 기다리는 일. 그 일들을 하고 계신다. 하루 종일 매일 매일 조용히 큰 라디오 소리만 흘러나오는 그 방 안에서. 할머니의 다리는 붓고 부었다. 퉁퉁 부어서 터질 것 같은 부스럼이 떨어지는 발. 오그라져 그 상태로 굳어 버린 부스럼이 떨어지려 하는 손. 눈물이 괸 채로 때로는 온화함에 때로는 아픔에 또 때로는 안절부절함이 서린 할머니의 눈. 뼈만 앙상히 남은 할머니의 팔 다리 그리고 몸.내가 할머니의 과거에 대해서 아는 것은 할머니가 바느질을 평생 하셨다는 것. 젊었을 때 밤이 새도록 바느질을 하셨다는 것. 나이 들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적적히 계셨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와 계시다는 것. 서울에 갔다가 저녁 늦게야 들어와 할머니의 종소리를 듣고 방으로 달려갔다. 이불 속에 감춰진 손을 꺼내시며 내 손을 달라 하신다. 그리고 잡아 주신다. 하루 종일 왜 안보였냐며 어디에 있었냐고 물으신다. 서울엘 갔다 왔다고 했다. 아침에 서울에 나가기 전에 인사를 하려 할머니 방에 들렀는데 주무시고 계셔서 그냥 갔다고 하니 다음부터는 꼭 깨워서 인사를 하고 가라고 하신다. 괜찮으시단다. 할머니에게 빨대를 물려 드리고 할머니 물 한 모금 넘기시는 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고 할머니 방을 나오는데 할머니가 ‘와줘서 고마워’라고 하신다. 편찮으시기 전에 할머니는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을 늘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가능하면 혼자 힘으로 많은 걸 하려고 하셨다. 빨래며 산책이며. 그런데 이제 물 한 모금 드시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없으시다. 그런데 나는 그런 할머니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할머니는 더 하얘지시고 더 부드러워지시고 더 좋은 냄새를 내신다. 할머니의 육신은 나이가 들어가지만 할머니의 목소리, 눈빛, 말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는 더 아름다워지고 있다. 부끄럽게도 죄송하게도 나는 할머니를 위해 기저귀를 가는 일도 아직은 조금 떨리고 긴장되고 두렵다. 할머니의 쇠약해진 몸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이 나는 조금 무섭다. 할머니.. 샘터 할머니.. 아름다운 우리 할머니..

2010년 11월 어느 날
개척자들 박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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