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인연 (송강호)

2012.08.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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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인연

송강호의 평화 이야기


수용자 증에 현기환이라는 가장 어린 막내가 있다. 서귀포시에서 막일을 하며 지내다 술을 먹고 방화를 해서 현재 수감되어 있다. 어리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자기가 모욕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면 발끈하곤 해서 형들에게 꾸중을 듣곤 했는데 지난 8 3(금요일)에 또 한 번 충돌이 있었다. ‘선관위현기환 3억 공천 헌금 받아”’ 라는 경향신문 1면 표지 제목을 보고 내가기환아 네 이름 여기 나왔다.”라고 하니까 옆에 있던 다른 재소자가현사장님 또 절도까지 하셨군요라는 투로 조롱을 하자 드디어 기환이가 자기 이름을 갖고 놀리지 말라고 성을 냈고 나이 든 재소자가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야지 어디 버릇없게 대드느냐?”고 화를 내면서 그 아이의 식탁 자리를 앞창 쪽(재소자들은 그쪽을 상석이라고 여김)에서 화장실 앞으로 당장 바꾸라고 윽박질렀다. 이 어린 신입 재소자는 아무 소리 못하고 자리를 옮겼다. 나는 나이 든 형들이 농담을 웃어 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는 후배 재소자에게 꾸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감정에 북받쳐서 식탁에서 이리 앉아라 저리 앉아라 할 권한은 재소자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봉사원인 내 역할에 속한 것이지 단지 먼저 들어온 선배 수감자라고해서 사적으로 그를 명할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주말 회의에서 이를 따졌다. 그러자 그 재소자가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고 내게 대들었다. 그는 이 방의 규칙을 지키지 않을 거면 방에서 내보내겠다고 한 내 말에 분노와 야속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그래도 더 오래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는 자기 편이 되어주어야지 신입 편을 든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나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나는 봉사원으로서 이 방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불편하지 않도록 섬길 책임이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바지 봉사원(얼굴마담처럼 상징적으로만 세워 놓는 봉사원)으로 세운 것 아니냐, 그런데 이제 와서 권한을 행사하려 든다고 비꼬았다. 감옥에서앞창 타는 게 힘들다는 말들을 한다. 봉사원 자리 지키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주먹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앞창을 타고 그 작은 특권 같지도 않은 특권을 빼앗기 위해서도 그렇게 치고 받고 싸우는데 세상 권력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는 처음부터 봉사원을 하려고도 않았고 내가 안 하면 감방 안에서 분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다른 재소자들이 간청해서 수락했을 뿐이다. 내가 봉사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소위”(깡패, 조폭들을 감옥에서 일컫는 말)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때로 정치란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안철수도 그런 생각으로 정치판에 뛰어 들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투었던 재소자는 아무것도 아닌 덜 떨어진 어린 놈 하나 때문에 나하고까지 갈등이 생겼다며 그 어린 놈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별렀다
.


나는 오늘 묵상을 하며 기환이가 우리 안의 소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자존심을 지키려다가 형들한테 꾸중과 욕설을 듣고 구석에서 우울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어린 아이. “저 놈 하나 때문에 우리 모두가 불편을 겪고 있다고 비난 받는 그 어린 아이가 내 곁에 있는 소자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거의 10년을 감옥살이를 하고 지금도 살인범으로 구속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수용자가 내게여기 있는 사람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죄 짓고 들어온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하며 어린 재소자 하나 감싸주기 위해 절치부심(
切齒腐心)하는 내가 너무 딱하다는 듯이 말을 던진다.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람이 다 똑 같지, 여기 있는 사람이나 밖에 있는 사람이나 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 거지 뭐 다를 게 있습니까?” 나는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다. 실제 지금 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술 취해서 실수를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계획적인 범행을 저지르고도 증거를 인멸시킨 채 버젓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숱한 교활한 범죄자들에 비해서는 억세게 재수없는 사람들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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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내 앞에 숨죽이고 앉아 있고 잠들면 내 발 밑에서 외롭게 잠들어야 하는 소위방화범소자를 늘 눈 앞에서 보게 되는 현실이 불현듯 어떤 인연이랄까, 아니면 운명이랄까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아마도 이와 비슷한 특별한 느낌을 느끼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어린 학생들은 학교에서 힘세고 짓궂은 아이들에 둘러싸여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자기 친구를 보며 이불편한 인연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소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힘없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명문사립대학인 성균관대학교의 수학교수였던 김명호씨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남부럽지 않을 엘리트라고 여겨지겠지만 삼성재벌이 든든히 받쳐주는 성균관대학 이사회와 쟁쟁한 판검사들 앞에서는 비참한 왕따로 전락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김명호씨는 석궁사건을 주제로 한부러진 화살이란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는 불의한 대한민국 사법부의 폭력 앞에서 외롭게 투쟁하고 있다. 그의 외로운 투쟁은 95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본고사 수학 II 7번 문제가 출제 오류임을 발견하고 이를 지적함으로써 이를 은폐하려고 했던 대학당국과 충돌하게 된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는 부당하게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할 뿐 아니라 정직 3개월의 중징계까지 받게 된다. 그는 이 억울한 처지를 법에 호소하게 되었으나 법원으로부터 패소하게 된다. 이에 불복한 김명호교수는 석궁을 들고 담당판사였던 박홍우판사에게 위협적인 시위를 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두 사람의 몸싸움 중에 석궁이 발사되었다. 결국 박홍우판사는 자신이 석궁에 맞았다고 주장하면서 화살들과 석궁에 의해 구멍이 나고 혈흔이 묻은 옷가지들을 증거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김명호교수는 이 옷에 묻은 혈흔이 박홍우의 것이 아닌 조작이라고 주장하였고 아직까지도 사법부는 판사의 혈액을 채취하여 옷가지의 혈흔과 동일 인물의 것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혈흔검증신청이라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만일 원고와 피고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물어볼 필요도 없이 혈흔확인은 끝났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사법부 스스로가 증거해주고 있다. 판사들은 정의를 버리고 거짓과 불법을 일삼는 동료 판사를 감싸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김명호교수를 구속수감하고 억눌러 버릴 만큼 자신만만하다. 차라리 오만 무도하다는 표현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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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를 생각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다. 19세기말 프랑스 사회를 뒤흔들었던 비운의 사건의 주인공인 드레퓌스다. 드레퓌스는 간첩혐의로 고소당해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그의 혐의에 의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국가 권력과 가톨릭교회와 거대 언론들은 점차 드러나는 진실을 은폐하면서까지 국가주의의 아성을 지켜내려 했다. 그 따위 아무 것도 아닌 유대인 장교 하나쯤 희생시킨들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힘있는 자들의 오만에 대항하며 자신의 온 인생과 저작들의 명예를 걸고 투쟁했던 에밀 졸라가 없었다면 드레퓌스는 평생 감옥에서 늙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신형 보다 더 커다란 비극은 국가주의의 광기에 짓밟힌 진실의 죽음일 것이다. 때로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서 목숨조차도 아끼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역사였다. 매국노, 정신병자, 인간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고 결국 1년의 금고형을 선고 받아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야만 했던 에밀 졸라와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먹은 진범을 밝혀내고 드레퓌스의 무죄를 밝혀낸 대가로 억울하게 체포구속 당했던 피카르 중령, “재판의 오류,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이란 글을 발표하여 이미 종신형을 선고 받고 악마의 섬에 유배된 지 2년이 지난 사건에 새로운 재심의 불을 당긴 베르나르 라자르 기자, 그리고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스스로 유대인이라는 시대적 낙인을 감수하면서까지 드레퓌스 구명운동을 벌인 쉐레스 케스네르 상원부의장과 같은 이들이 마침내 이 드레퓌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었다. 나는 이들이야말로 소자 드레퓌스를 돕도록 하나님이 감동케 한 사람들이라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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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 남단 강정마을에서는 한 작은 마을의 힘없고 연약한 주민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해군, 재벌들을 상대로 5년이 넘도록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이 권력자들과 재벌들은 강정주민들을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야만인들이거나영혼이 없는 고기 덩어리들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있지만 강정마을은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아프리카 흑인들처럼 인신을 강제로 구속 당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버렸다. 비단 강정뿐이겠는가? 대추리가 그러했고, 용산이 그러했으며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SJM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지금도 이 땅의 소자들은 송전탑 아래서, 두물머리 끝에서, 구럼비에서, 반월공단에서 벼랑 끝에 몰린 채 힘겨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투쟁이야말로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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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소자를 돕는 것이 신앙의 행위이고 선교라고 믿고 있다. 이들과불편한 인연을 맺고 이들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야 말로 증인이요 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정말 복되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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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일기 2012. 8. 5. () 구름 끼고 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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