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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그들에게 돌려주라

[인터뷰] '강정 해군기지 반대' 외쳐 온 송강호 박사의 '공평해' 이야기
최승현 기자 shchoi@newsnjoy.or.kr | 2016.03.14  17: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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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온몸으로 막아 온 송강호 박사. 그의 노력에도 해군기지는 준공됐다. 그러나 송강호 박사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해군기지가 '평화 대학'으로 바뀔 때까지 이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강정마을회)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한반도는 조용할 날이 없다. 서쪽에는 중국, 북쪽에는 러시아, 동쪽에는 일본과 미국이 있다. 248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동족도 있다. 전쟁 위기가 가시지 않는 긴장의 땅이다.

주변국들은 자국 영토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핵항공모함이 부산에 입항했다느니, 중국이 잠수함을 진수했다느니 하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한다.

우리 정부도 이런 명분으로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했다. 지역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정부는 남해 해군력을 확대하겠다며 공사를 강행했다. 지난 2월 26일 준공식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국제 자유 도시'며 국가 안보를 뒷받침하는 '평화의 섬'이라는 제주도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친환경 관광 미항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공존(共存)과 평화(平和)의 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신념으로 5년 넘게 제주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를 반대해 온 사람이 있다. 송강호 박사(개척자들)는 용천수가 솟아 나오고 희귀 생물이 서식한다는 '구럼비 바위'를 폭파할 때, 가만히 있지 못했다. 경찰은 펜스를 넘었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했고 180일 동안 수감했다.

기지 준공을 막지 못했지만 그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송강호 박사의 꿈은 해군기지를 폐쇄하고 그 자리에 '평화 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며 반면교사의 장으로 삼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는 아직 제주에 있다.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열강들의 힘겨루기 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바다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것이다. 이름하여 '공존과 평화의 바다', 공평해(共平海)다. 제주 강정과 일본 오키나와 섬, 그리고 타이완을 잇는 삼각 지대를 공평해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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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호 박사가 제안한 공평해는 제주 강정과 타이완,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해역이다. 중국과 일본 간 영토 분쟁 중인 센가쿠 열도(댜오위다오), 군사기지가 있거나 건설 중인 오키나와, 이시가키, 요니구니지마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이 지역에는 중국과 일본이 영토 분쟁 중인 '센가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가 있다. 한국 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도 이 수역에 들어가 있다. 이곳은 한·중·일 사이 긴장이 계속 발생하는 곳이다.

2013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이어도가 포함되면서 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이 겹쳐졌다. 지난 2월 말 중국 공군이 KADIZ를 넘어오기도 했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도 유사시 중국에 진출할 수 있는 위치다.

타이완과 일본의 평화운동가들도 송강호 박사의 '공평해' 개념에 동감한다. 세 나라 세 섬 평화활동가들은 2014년 6월 '평화의바다를위한섬들의연대'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첫해 제주 모임을 시작으로, 지난해 9월에는 오키나와에서 모였다. 올해 8월에는 타이완에서 연대를 모색한다.

공포를 넘어 희망으로, 삼도(三島)가 뭉치다

제주도, 오키나와, 타이완. 송강호 박사는 세 섬이 서로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함께 평화를 외칠 수 있다고 말한다. 타이완은 국공 내전 당시 장제스 총통이 군대를 이끌고 섬에 들어왔다. 본토와의 전쟁을 위해 섬 전체를 군사기지화했다. 일본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미군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일제시대 제주 대정에는 난징을 폭격하기 위해 알뜨르비행장이 건설됐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많은 이들이 학살당했다. 제주 4·3 사건, 타이완 2·28 사건, 오키나와 전투 중 '자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각각 3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송강호 박사는 세 섬 사람들에게 본토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세 섬 모두 군인에게 끔찍한 공포감이 있다. 이것은 양날의 검이다. 도망치고 싶은 그런 두려움이 있다. 정부와 등을 졌다가 무자비하게 죽임 당한 역사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걸 뛰어넘어 평화에 대한 신기루 같은 희망을 지니고 있다. 오키나와에는 청년 때부터 평화운동을 해 온 백발노인도 있다. 섬들을 방문해 '평화의 섬 만들자, 여러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하면, 그들도 '함께하자'고 답한다."

오키나와 남쪽 미야코지마, 이시가키, 요나구니 섬에 해상자위대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 이 섬들에도 기지를 반대하는 운동가들이 있지만, 섬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주민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송강호 박사는 이들과의 연대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마침 오키나와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3월 초, 주일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보류된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과 활동가들이 연대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이 부분을 설명할 때 송강호 박사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이런 의미 있는 변화들이 차곡차곡 쌓여 바다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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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호 박사는 "공평해는 그 누구의 바다도 아닌, 거기서 삶을 내어놓고 고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대국들의 파워 게임이 아니라 '약한 자, 가난한 자의 바다' 말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공평해 2,000킬로미터 항해 여정의 닻 올리기

지난해 7월, 평화의바다를위한섬들의연대는 제주 앞바다에 배를 띄웠다. 무동력 요트에 의존해 제주를 한 바퀴 돌며, 많은 사람들에게 공평해를 알리고 관심을 가져 줄 것과 동참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좀 더 큰 도전을 시작한다. 요트를 타고 강정에서 출발해 오키나와와 타이완을 항해하는 것이다. 두세 달 걸리는 긴 여정이다. 강정에서 오키나와까지는 직항로로 700킬로미터. 실제로는 남해와 대마도 연안을 거쳐 오키나와로 내려가기 때문에 2,000킬로미터 가까이 늘어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12일에는 이길승 밴드가 주최한 후원 콘서트가 열렸다. 2000킬로미터 항해를 도울 2,000명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다. 한 사람당 1만 원씩 보태면 이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송강호 박사는 배를 띄우는 것 자체보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더 공평해를 알고 취지를 이해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 지역이 국제법상 공평해가 될 확률은 낮지만, 송강호 박사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타이완 한 활동가가 이 바다를 공존과 평화의 바다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럼 공존과 평화의 바다를 줄여 공평해라고 하자'고 말했다. 다들 웃었다. 평화운동가들이 제주도를 제주특별자치도라고 하지 않고 '평화의 섬 제주도'라고 하듯, 공평해란 말은 공식적인 용어가 아니다. 그래도 꾸준히 사용할 것이다. 씨를 뿌리듯이 공평해라는 개념을 전파할 것이다.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 나가듯이 말이다."

국제적으로 이 수역은 '동중국해'에 속한다. 명칭을 바꾸자는 게 아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송강호 박사는 사막에 나무 심는 마음으로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희망과 신념의 문제다. 이 바다는 그 수역에 삶과 죽음을 맡기고 고기를 잡는 사람들의 바다다. 약하고 힘 없고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바다다. 그들이 그걸 공평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불러 줘야 한다."

공평해를 한 바퀴 도는 항해는 내년 여름 즈음 닻을 올릴 계획이다. 함께할 사람들을 찾으며 매주 수요일 제주에서 카약 학교를 열어 워밍업을 하고 있다. 요트 한 척으로 헤쳐 나가기에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송강호 박사는 "태평양 제도 부족들도 다 그렇게 다닌다"며 자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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