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우리 가족 모두가 라하네에 정착했소. 벌써 거의 30년이 되었구려. 나는 오랜 시간 동티모르의 독립군이었소. 나를 잡아 가두려고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혈안이었지만 다행히 무사했소. 분명, 신의 가호라고 생각하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그러니까, 벌써 400년 전의 일이오, 포르투칼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 한 때는 포르투칼이 떠나고 일본이 포악을 부리던 시절도 있었지. 그러다 돌아온 포르투칼에게 자리를 내 주고, 다시 포르투칼이 완전히 물러가고… 동티모르는 400년이 넘도록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산 셈이오. 그리곤 35년 전부터 인도네시아가 이 곳을 점령했었다오. 학교 옆 불타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기억하오? 포르투칼의 무기 창고였던 그 곳을, 1974년 인도네시아가 들어와 무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파괴했소.

인도네시아의 통치는 참으로 가혹했소. 끔찍한 세월이었소. 인도네시아인과 차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소. 여자들은 밖을 제대로 다닐 수도 없었소. 이슬람인 인도네시아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묻지 않고도 길에서 구타당할 수 있었으니까. 남자들도 마찬가지였소. 모이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모여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주면 죽을 수 있었소. 아무도 이유를 묻지 못했소. 항의하지도 못했소. 누구도 티모르인들을 존중하지 않았소. 원하면 죽였지. 노예처럼 부린 것은 물론이었소. 아무런 자유가 없었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세월이었소.

1999년, 인도네시아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하기 위한 국민 투표가 있었소. 물론, 투표를 허락했다고 해서 인도네시아가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오. 총을 든 군인들을 투표소로 보내 우리의 투표를 지켜보게 했지. 그러나, 모두 미리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소.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투표장에 갔다오. 모두들 용감했지. 그것이… 당시 티모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소. 그 때의 동티모르는 궁지에 몰린 쥐였소. 고양이를 향해 덤빌 준비가 되어 있었지. 우리의 결의가 워낙 서슬 퍼렇다보니 반대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겁을 집어 먹었소.

인도네시아는 비단, 무력으로만 우리를 방해한 것이 아니었소. 우리 중에도 계속 인도네시아의 지배 하에 남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 매수된 사람들이었소. 인도네시아가 준 돈 때문이었다오. 그들은 물론 인도네시아에 남기를 선택하는 투표를 했고, 사람들 또한 그렇게 하도록 독려하기도 했소. 그러나 다행스럽게 대부분의 티모르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돈에 자존을 팔았다고 생각하오. 우리 역시 알고 있었소. 독립하면, 아무것도 없는 우리가 당시보다 얼마나 더 가난해질지를. 그러나 그렇더라도 해야만 했소. 그것이, 우리의 자존(自尊)을 지키는 일이었소. 우리 아이들에게 자존을 물려 주고 싶었소.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우리가 원하는 때 할 수 있는 삶을 주고 싶었소. 해야만 했소.

당연히, 그 해의 동티모르는 조용할 수가 없었지. 99년에도 전쟁이 있었다오. 라하네는 다래와 발리데 두 마을로 나뉘어 한 달간 피난을 떠났소. 고맙게도 다래와 발리데가 우리를 환영해주고 잘 돌봐 주었었지. 모두 서로 도와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소.

결국 동티모르는 독립을 선택했고, 준비 기간을 거쳐 2002년에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소. 그러나 기쁨은 잠깐, 승리 끝의 모든 것이 어려웠지. 독립을 선포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오. 여러 개의 군부가 난립하며 끊임없이 싸움을 했지. 특히 2006년 내전으로 라하네는 다시 나뉘어야 했어. 군부와 군부 사이의 전쟁이라고는 했으나, 자세한 내용을 알 수도 없었소. 다행히 전쟁 중에도 민간인 마을은 평화로웠고, 다만 군인들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었소. 우리 마을은 싸움에나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고 모두 서로를 도와 피난을 떠났지. 나는 발리데에 머물렀소. 떨어져 사는 동안에는 거의 서로 연락을 할 수조차 없었소. 우리는 대부분 친인척이라오. 평화롭다고는 하나, 서로의 생사를 확신할 수 없는 채로 2년이 흘렀소. 정말 긴 시간이었지.
 
그러던 2008년, 딜리에 UN이 들어왔소. 그리고 UN의 도움으로 비로소 모두가 라하네에 다시 모일 수 있게 된 거요. 신의 가호로 우리 중 아무도 죽은 사람이 없었고, 마을도 파괴되지 않은 채 거의 그대로였다오. 그리고 지난 해에 여러분을 알게 되었소. ICR에서 열린 평화캠프를 기억하고 있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소. 우리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말이오.

아마… 조조(Jojo)와 아마꾸(Amaku), 이 아이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요. 2002년엔 태어나지도 않았고, 2006년에조차 아주 아기였으니까. 피난지였던 곳에서도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만 있을 거요. 우리는 이 아이들의 삶이 계속 그러기를 바라오. 인도네시아에도, 우리가 먼저 제안했다오. 서로 자유롭게 오가면서 평화롭게 지내자고 이야기했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이웃이오. 서로 도와야만 한다고 생각하오. 증오를 계속 이어가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

젊은이들(Collega),
이 곳에 와 주어 고맙소.
처음 겪었을 험한 환경을 불평 없이 묵묵히 받아들여 주어 고맙소.
귀한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우리 아이들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 주어 고맙소.
마을 사람 모두가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오.

그리고 말이오.
우리의 고통에 대해 물어 주어
정말 고맙소.
- 조제 마리아(Jose Maria), 라하네 마을의 촌장(Chief of Community)

빨간 바나나 한 다발과 쿠키 한 박스를 들고 약속된 시간에 파파 조제의 댁에 도착했을 때 그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이미 어두운 시간이었음에도 귀신 같은 아이들이 구름처럼 따라 나섰다. 어르신 댁에 폐가 될까 봐 집에 가라 계속 타일렀지만 말을 들을 리 없다. 파파의 가족들은 아이들을 긴 꼬리처럼 달고 나타난 우리들의 모습에 전혀 뜨악해하지 않으셨고, 아이들은 마치 제 집처럼 이 곳 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파파의 자녀들과 손자손녀만으로도 넓지 않은 집의 거실이 터져나갈 듯 꽉 찼지만 누구도 당황하거나 아이들을 쫓지 않았다. 이 곳이 내 집 네 집, 내 아이 네 아이의 구분이 희미한 마을 공동체라는 것을 자꾸 잊는다.

설탕이 밑바닥에 두텁게 깔린 달디 단 네스카페 커피 한 잔씩과 비스킷 한 접시를 대접 받았다. 아이들과 과자를 나눠 먹으려 하자 조제의 딸이자 조조와 플로린다의 엄마가 부드럽게 고개를 저으셨다. 아이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엄마를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엄격한 표정 뿐. 손님의 음식에 손대지 못하도록 가르치시는 것 같았다. 여섯 살 조조가 뿔이 나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도 과자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접시가 나가는 순간 아이들이 우르르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더니 양 손에 비스킷 한 개씩을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귀여운 녀석들.

한 시간 늦게 파파 조제가 집에 도착하셨다. 마을에 혼자 사는 어느 나이 많은 여인에게 어려움이 닥쳤는데,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도울 방법을 찾느라 늦으셨다고 했다. 다음 날도 아침 일찍부터 빡빡한 일정이 파파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슷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야윈 몸의 촌로가 감당하기에 벅차 보이는 스케줄이었으나, 그는 그것이 마을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셨다. 그는 라하네 마을의 '파파'였다.

몹시 피곤한 얼굴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는 우리와의 이야기를 무척 즐거워하셨다. 주로 우리가 질문을 드리고 파파가 대답을 하셨다. 옆에 계시던 인자한 얼굴의 마마가 가끔 거드시기도 했다. 대화의 말미엔 파파가 우리에게 라하네에 대한 인상과 캠프를 진행하면서 든 생각에 대해 일일이 묻고 주의 깊게 들으시기도 했다. 올가가 파파와 우리 사이에서 통역을 하고 때로는 영희 언니의 한국말을 내가 영어로, 다시 영어를 티모르어로 옮기기도 하는 불완전한 대화였으나, 그런 제약이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하시는 어르신의 진심을 가로막지는 못했다.

나오는 길, 모두가 깊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고통에 대해 물어 주어 고맙다던 조제의 말씀이 가슴 깊이 남았다.
알 수 없이 울컥 눈물이 솟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퍽 아프기도 했다.

인간은 고통 가운데서도 지속적으로 선택하는 존재다. 주도적으로 택했다 여기든 끌려갔다 여기든, 모든 것이 결국 그의 선택이며, 그러한 선택의 합이 한 사람의 오늘을 이룬다 믿는다. 나는 그 날 조제 할아버지와 그 가족들이 보여 주신 품위와 진심을 통해, 그들이 압제와 전쟁과 궁핍 같은 야만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택하며 여기까지 왔는지 볼 수 있었다. 하여, 동시대를 사는 같은 인간으로서, 마음 깊이 감사했다. 그런 분이 파파인 이 마을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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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 night of Lah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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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짜고짜 글부터 올린 셈이 되었네요. :) 잘 지내셨어요?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저희는 Jang & Abby라는 부부이고, 지난 7월부터 긴 여행 중입니다. 8월 동티모르 평화캠프 참가자였고요.

 

라하네 촌장님과 말씀 나눈 밤에, 마을의 이야기가 정리되면 개척자들과도 나누기로 저희 팀 영희 언니와 얘기했었거든요.

앞에서부터 글을 쓰다 보니, 게다가 제가 글 쓰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보니 이제사 파파와 보냈던 밤까지 진도가 나갔네요.

(참, 티모르에 대한 글들은 http://iamfineandyou.com/category/길%20위에/Timor%20Leste,%202010?page=2 이 곳의 맨 아래부터 보시면 차례대로 보실 수 있어요!)

 

저희는 시드니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감회를 절절히 느끼던 초반 충격을 흡수하고  잘 지내고 있고요 ^^

벌써 중반 넘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뉴질랜드에 가서 몸도 마음도 좀 추스른 뒤에,

말레이시아 국제부 방문을 시작으로 다시 여행입니다. 아직 계절 하나는 족히 남았는데 마음은 벌써 아시아에 있습니다. ㅎㅎ

 

저희 둘이 기도하는 시간에, 가끔 개척자들의 기도제목을 보며 함께 기도합니다.

샘터는 몹시 춥겠지만 또 몹시 근사한 계절이겠네요. 모두에게 그리움 더해 안부를 전합니다.

 

"애비와 장군 잘 있어요!!"

 

축제와 같은 평화를 빕니다!

 

Jang & Abby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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