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 일본에서 온 소식입니다

2011.05.02 14:52

개척자들 조회 수:1436

안녕하세요. 일본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4월 말, 일본에 온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름 모를 꽃들이 활짝 피어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정원에 심은 나무에도, 공공기관에서 관리하는 땅 여기저기에도, 길섶의 한줌도 안되어 보이는 흙 위에도, 쓰나미가 휩쓸고 간 어느 집 앞마당에도, 꽃은 피어 있었습니다. 일본에 온지 한 달이 다 되어 지난 날을 되돌아보니 아, 그 곳에 꽃이 피어 있었는데하며 뒤늦게야, 4월은 꽃이 피는 계절, 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변의 꽃 한 송이에 눈길 한번 주지 못한 채, 정신 없이 한 달을 보냈습니다.

 4구입한장비와 음식물등.jpg


일본의 동북부 대지진 피해 재건 상황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외 국가나 구호단체들의 활동보다도, 일본 내에서의 자체적인 인력과 자원만으로도 충분해 보일 정도로 이 나라는 고난의 극복에 열을 올리고 습니다. 어떤 중대한 사건을 함께 겪을수록 그 집단의 공동체 성은 더욱 잘 다져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이곳 사람들과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광고에서, 일본은 이 나라의 하나됨을 외치고 온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과 의지와 자신감을 여지 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 종교단체와 사회단체, 학교 등에서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각 단체들의 내부시스템도 확고히 다져지면서 보다 더 효율적으로 구호활동이 진행 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장희,난영) 지난주 월요일, 허목사님과 함께 츠쿠바에서 센다이로 이동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근처 대형 마트에서 일주일 치 음식과 재건작업에 필요한 장비 등을 구입했습니다. 허목사님의 자동차로 5시간 정도가 걸려 센다이에 도착했습니다. 숙소는 센다이 시내 한복판에 있는절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었는데, 재건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센터로 바뀌어 전국각지의 스님들이 모여 일을 진행하는 장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일본스님들은 여러가지로 굉장히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저희는 그곳을 숙박지로만 빌려 쓰고, 작업은 센다이 기독교 연합에서 진행하는 팀에 합류하는 식이 되어서 그곳 자체의 일은 전혀 돕지 않았는데도 저희들을 진심으로 환대해 주셨고, 맛있는 오키나와 요리도 대접해 주셨습니다. 저희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신 한 스님께서는 장희에게 정성 들여 소바를 끓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스님들의 자유분방함과 깊은 배려심 때문인지 몰라도 일본에 온 이후로 스님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꼈습니다.

 6히가시마츠시마-우리가 작업한 지역.jpg


저희들은 센다이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해안 도시 히가시마츠시마(東松)에서 한주간 작업을 했습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본 피해현장 중에서 가장 피해가 큰 곳이었습니다. 집의 뼈대조차도 남지 않고 휩쓸려간 집이 많았고 남아있는 집도 대부분 폐허처럼 못쓰게 되어 대부분의 마을주민들은 아직 피난소에 있거나 다른 지역으로 가 있어 재건작업이 활발히 진행되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 마을 하천과 해안가에서 아직도 행방불명자 수색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저희가 작업을 하는 중에도 쉽게 일본군대가 열을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요 며칠간 그 지역에서 시신 몇 구가 추가로 발견 되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저희들은 센다이기독연합피재지원센터에 가입해 그곳에서 작업을 받아 일을 진행했습니다. 그곳은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간의 초교파적인 지원센터로, 일본국제기아대책기구, 크러쉬재팬 등의 단체도 함께 하고 있는데, 저희들은 여러 곳에서 온 팀들과 한 팀이 되어 피해 가정의 복구를 도왔습니다. 주로 한 일은 집안으로 들어온 침전물과 진흙을 삽으로 퍼내 운반하는 일과 집안의 못쓰게 된 물건들 중에서 특히 혼자서 옮길 수 없는 무거운 가구 등을 다같이 옮겨 바깥에 버리는 일 등이었습니다.

8작업중-점심시간-허목사님과 장희.jpg


 한참 작업을 하는 도중에 어떤 기독교단체에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외국인과 일본인들이 함께 온 걸 보니 국제적인 기독교단체인 것 같았는데 어느 외국인은 서투르게나마 일본어를 구사하면서, 저희가 돕던 피해 가족의 손을 잡고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애도의 표정으로 열심히 위로의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한참을 작업을 하는 도중에 맥을 끊고는 자기들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얘기하고 이 고난을 극복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시고 마지막에 다같이 기도를 하고 아멘하고는, 곧 자동차를 타고 현장을 떠나는 걸 보니 저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나르고 고된 노동을 하는 곳에 와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몇 마디 하고 기도 한번 하고 가버리는 모습은 정말로 어처구니 없게 느껴집니다. 피해가족의 집에는 여기저기 부처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집안에는 들어오지도 않았으니 그런 사실을 알 리도 없겠지요. 이번 대지진이 있은 후 많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지금이야말로 일본에 복음이 들어갈 기회다 해서 피해가족들과 접촉해 가면서 정신적 케어라는 이름으로 복음전파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쉽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또 다른 기독교단체에서 저희가 일하는 가정을 방문해 주인 아주머니와 피해상황과 여러 얘기들을 나누고 마지막에 어떤 서양사람이 대표기도를 하고는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위로하시고 지켜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의 기도였습니다. 말끔한 옷을 입고 잠깐 현장에 와서 아름다운 기도를 함께 올리고 곧 떠나버리는 기독교단체의 신앙인들의 모습은 결코 선한 일로 여겨지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인자하고 온화한 품성과 깊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 여겼을지 몰라도 피해현장에서 만난 몇몇 신앙인들의 모습은 반감을 일으키게 합니다. 저는 신앙인이라 할만한 사람이 못되지만, 과연 신앙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기도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멘이란 어떤 의미로 내뱉어야 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님들도 대체로 무척 부유한 생활을 하는 듯 보였지만, 이곳에서 만난 목사님들도 대부분 물질에 부족함 없는 삶을 영위하는 듯 보였습니다. 과연, 종교 지도자들이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이 합당 한 것 인지과연, 부유할 수 있는지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유물에 부족함 없는 여러 종교인들과 목사님들을 만나면 자꾸만 슬퍼집니다. 그리고 나는 가난하게 살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4 28()부터 5 8()까지의 기간은 일본의 황금 휴일기간입니다. ‘골든위크라고 불리는 이 기간을 이용해, 현재 일본 내 수많은 사람들이 재건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하기 위해 지진피해지역으로 모여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간에는 지진피해지역의 자원봉사자 숙박지와 주변의 유료 숙박지에도 굉장히 사람들이 붐비리라 예상됩니다. 이 기간은 한국의 명절과 같아서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상점들이 문을 닫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장희와 저는 지난 일주일의 재건활동을 마치고 현재 이바라키현 미토라는 곳의 한인교회에 와있습니다. 이 교회도 지진피해를 크게 입어 다른 건물에서 임시로 교회로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로 열악한 상황이라 저희도 숙박료를 지불하면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지내는 동안은 교회 1층의 자원봉사자 숙박소와 부엌 공사 일을 돕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종종 주변지역에서 물자가 필요한 곳에 가서 물자 배분 하는 일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계획 중에 있었던 이와키 지역 재건활동이 한 주 연기 되는 바람에 당분간의 계획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게 되었습니다.

 

5월 중순쯤에는 센다이 지역의 센다이기독연합피재지원센터(토호쿠헬프)에 개척자들의 이름으로 들어가 안정된 숙박소와 일할 곳을 찾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여러 사람들과 단체를 만났지만 좌절감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그러한 기관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조금 무겁습니다. 지혜와 용기가 필요 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그럼 다음주에 다시 편지 쓰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미토에서 난영.

 

<기도제목>

난영, 장희

1.     함께 일하는 봉사자들과의 이해와 협력을 통해 사역의 방향을 찾아가도록

2.     센다이기독연합피재지원센터(토호쿠헬프)에 안정된 숙소와 일할 곳을 찾게 되기를

3.     좌절감 속에서 희망의 자리에  설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가질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