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28 15:24
안녕하세요. 제주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마을 포구에서 어느 날,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가며 시끌벅적 하던 때였습니다. 활동가들이 카약을 타고 바다에 나가려는데, 경찰이 이를 막아서고 있어 사람들이 경찰들에게 항의하는 소리들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의 인원이 경찰들에 비해 훨씬 적었지만, 경찰들이 쌓은 이중 삼중의 인간벽은 도저히 뚫을 수 없이 견고했었지요. 그런데 저 멀리서 소리 없이 세 걸음 사뿐 걷고, 한 번 절 하며 걸어오시는 흰 수염 할어버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새 경찰들 벽 앞까지 왔는데, 아무 말없이 경찰들 앞에서 계속 절을 했습니다. 잠시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이중 삼중의 인간벽이 어느 순간 그 할아버지만 지나갈 수 있도록 열린 것입니다.
그 이후로 흰 수염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오후 공사장 정문 앞에서 하던 삼보일배를 오후에는 강정포구에서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매일 오후마다 강정포구에 걸어가서 삼보일배를 하였는데,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나와서는 절을 하고 있던 흰 수염 할어버지 손을 붙들더니 해군기지 찬성을 열렬히 하기로 유명한 식당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식당에 끌려간 흰 수염 할아버지는 아주머니가 차려 주는 막걸리 한 잔과 안주를 얼떨결에 먹으며 반복되는 말 한마디를 들었지요. 그건 ‘고맙습니다’라는 말이었답니다.
강정에서는 삼보일배 하는 흰 수염 할아버지를 오철근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사모님의 병환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시간을 나누어 500일 동안이나 강정에서 삼보일배를 하는 퀘이커 교인입니다. 지난 주 화요일이 정확히 500일 째 되는 날이었는데, 그 날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삼보일배를 했답니다. 온갖 더러운 것들을 무릎과 손에 묻혀가며, 미움, 시기, 분노를 모두 내려놓고 절을 하였지요. 오철근 선생님은 이제 병환 중인 사모님을 돌보며, 집 옥상에 있는 멋진 텃밭 농사를 위해 다음을 기약하며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빈 자리는 언제든 채워지기 마련인지라, 무전여행을 온 젊은 청년 커플이 오철근 선생님의 삼보일배에 감격하여 강정에서 머문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갑니다. 여자 친구는 틈틈이 오철근 선생님이 해오셨던 것처럼 삼보일배를 이어나가고 있는 멋진 청년이랍니다. 그렇게 강정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소식도 전할게요. 지난 주는 한 마리에 만원이나 하는 옥돔 다섯 마리로 포식을 했습니다. 집에서 두 번째로 시끄러운 에밀리는 ‘평화의섬 연대’모임과 ‘평화의 바다’라는 주제로 평화캠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Bro song 이 오면 준비에 더 탄력이 불을 것 같습니다. 빛나는 호수(정주)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어지러움증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제주의 여름은 지독하게도 더운데 걱정입니다. 파코는 조성봉 감독의 영화 ‘구럼비 바람이 분다’ 영어자막 작업을 마쳤습니다. 이제 곧 상영이에요. 실버는 아기는 안 만들고, 양말로 귀여운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Jaeby 엄마라고 불러주세요. 동원은 한라산 중턱에서 고사리를 한 바구니 꺾어 왔는데, 아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 줄 거에요.
이번 주도 세월호 참사로 가슴 쓰라린 한 주가 되겠지만,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기도제목]
1. 이제 곧 벌금을 내기 위해 노역을 택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롭게 살 권리, 자유롭게 평화를 말할 권리가 이 땅에서 억압받지 않게 될 날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2. 강정마을 주민들 스스로가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 분들의 마음 속에 희망과 용기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3. 개척자들 제주 공동체 모두가 건강과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