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5 07:25
공평해 소식(20190923)
지난 16일 드디어 동경만을 나와 돛을 올렸습니다.
만을 나와서 넓은 바다에서는 자동항법장치로 편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저 브라덜 송이 다리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제법 큰 수포가 잡히고 따끔거렸습니다. 마땅한 약이 없어서 관절염에 먹는 소염제를 먹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강한 파도에 물집이 터지면서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처음에는 코사카 선장과 언어 소통이 되지 않고 무척 무뚝뚝하고 거친 사람이어서 불편했는데 점차 통하는 부분이 생겨서 나아지고 있습니다. 세계일주가 꿈인데 떠나려고 할 때마다 노모가 아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답니다. 지금 노모는 101세랍니다.
항해 7일차에는 태풍 상황을 봐가며 곧장 시모노세키로 25시간 항해를 하려고 하카타 섬을 출발했지만 태풍 타파로 인해 오사키시모지마에 피항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고 후진 마리나에 고박을 하고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 개척자들 원고를 썼습니다. 며느리 한솔이가 구글 지도로 그 섬에 있는 병원과 약국을 알려주며 걸어서 17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알려줬지만 원고를 보내기 어려워 6시간을 끙끙대며 시간을 날려 버려서 가지 못했습니다.
태풍이 지나고 아직 바람과 파도 가 거친 오늘 아침, 우리는 다시 돛을 올리고 맞바람과 파도를 넘어 출항했습니다. 시모노세키까지 지도상으로 4분의 1 남았는데 이 항해가 저에게는 공평해를 항해하는 실전 훈련으로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무사히 도착해서 동료들과 함께 제주를 향해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제주소식(20190923)
월요일 데보라와 파울라와 함께 만나 달꿈(예술대안학교)에 도착해 그곳의 청년들과 즐거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다음날에는 수원에 있는 출입국 사무소를 방문해 외국인등록을 마쳤는데, 거리가 멀어 거의 하루를 보낸 것 같습니다. 저녁에 남산의 야경을 보기 위해 서울로를 걸어 남산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은 조금 힘들었지만 멋진 야경이 고생스러움을 가셔주었습니다. 다음날 달꿈의 청년들과 사하자는 데보라와 파울라를 데리고 서울 투어를 했습니다. 전통 한약방 박물관을 방문해 족욕도 하고 전통차도 마시고 민속박물관과 북촌의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제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떠나 있지 않았는데도 제주도의 하늘과 바람이 그리웠습니다. 백배를 하고 인간 띠 잇기를 하면서 제주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요일에는 태풍이 너무 심해 백배도 인간 띠 잇기도 할 수 없었고, 석채 목사님이 주무시는 컨테이너가 비가 새서 목사님은 사무실에서 주무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오후가 되자 감쪽같이 바람이 사그라들더니 무지개가 떠 올랐습니다. 그렇게 매섭게 불었는데… 마치 기적 같았습니다.
저녁에는 ‘남일당 이야기’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강정에 활동가이신 오두희 선생님이 촬영하고 감독한 것입니다. 용산 참사가 난 후 20일 후 그곳에 들어 가셔서 1년을 함께 사시면서 열사들의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철거민들과 함께 투쟁해 온 이야기를 그분들의 목소리에 맞추어 두희 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을 따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타인을 위해 대가 없이 자신의 시간과 몸과 마음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기억하게 됩니다.
[기도제목]
1. 시모노세키까지의 여정에 함께 해주시도록
2. 공평해를 항해할 꿈을 지닌 청년들을 모을 수 있도록
3. 강정에서 개척자들이 해야 할 일을 찾아 잘 감당하고 연대하는 활동들에 깨어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