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2 12:41
방글라데시에서 온 소식입니다.
화요일에 히스모따라네 집과 아이샤 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저희가 2달 간의 시간 동안 이 두 가정의 가족들과 친해졌어요. 이번주에 각각 한국과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에 인사를 드리러 방문을 했지요. 오랜만에 히스모따라와 어머니인 아르빠를 만났습니다. 계속 병원에 가는 바람에 저희가 방문할 때마다 잘 만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어머니는 계속 천식약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 날은 어머니의 통증이 심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히스모따라는 저희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었답니다. 라일리가 히스모따라 화장이 예쁘다고 했는데 곧바로 저희 얼굴에도 해주었던 것이죠. 다시 2월에 온다고 하며 사진을 찍는데 어느덧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발루깔리 캠프에 처음 갔을 때 만났던 사람이 아이샤 였습니다. 지금 만삭이라 곧 아이가 태어날 예정입니다. 2월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이 가족들과도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가져다 주기도 했었지요. 떠나는 저희에게 선물을 주셨어요. 저희의 가족들에게 전해주라면서 손전등과 화장품을 주었지요. 그리고 아이샤는 무언가를 얘기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저희도 아이샤도 함께 만날 수 있어, 서로 감사함을 전하고 느꼈어요.
수요일에는 쿠투팔롱에 있는 한 학교에 방문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누르가 학교의 선생님 입니다. 지난 주에 찾아가 다음주 수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약속을 하였고 그래서 찾아갔지요. 처음에 학교에 도착했을 때 선생님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라일라도 잠시 자리를 비웠고 모즈누 혼자 학교에 10명이 안되는 친구들과 있었어요. 모즈누는 이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려 종이와 색연필을 꺼냈는데 그 순간 스무 명의 아이들이 어디선가 몰려왔습니다. 결국 종이와 색연필이 어디론가 가버리고 라일리가 돌아 왔을 때 모즈누는 이미 멘붕에 빠졌죠. 그리고 선생님이 왔습니다. 선생님이 상황을 파악하고 색연필을 가져간 아이들에게 색연필을 달라고 했습니다. 예상했던 인원보다 아이들이 학교에 많이 와서 종이도 모자르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 두꺼운 도화지를 대고 그렸었는데 그것을 네 등분을 하여 약 50명이 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고 다행히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었습니다.
이 날 저녁, 저희는 누르 선생님네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집은 발루깔리 캠프에 있었습니다. 누르의 아버지와 그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라일리가 종이접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관심을 보여서 함께 학을 접었습니다. 종이접기에서 학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닌데 아버지는 무척 잘 따라 하셨습니다. 해가 지도록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밥도 정말 많이 먹었습니다. 결국 라일리는 집에 돌아와 소화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저희는 다음 만남을 기약했고 학교에는 언제든지 오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에 로힝자 언어수업에 갔다가 무스타파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점심에 자신의 집으로 저희를 초대 했었지요. 그래서 무스타파를 만나서 로힝자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대화 중에 무스타파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운치파랑(Unchiparang)이라는 난민촌에서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듣기는 했었는데 가 보진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갈 수 있다고 얘기를 했지요. 그래서 다음날인 토요일에 운치파랑 난민촌에 갔습니다.
운치파랑 난민촌은 도로가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들어가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저희가 가 본 난민촌 중에 가장 물 사용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을 깎아서 집을 지었는데 경사가 제일 가파른 곳이었지요. 거의 절벽을 깎아 만든 집들이었는데 우기에는 비가 오면 사람들이 집에서 내려오거나 집으로 올라가는 것이 제한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가오면 땅이 진흙으로 바뀌고 이동하면 상당히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무스타파와 함께 이곳 소개를 받고 2시간 후에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2시간 동안에 난민촌을 둘러보는 중에 한 가정을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어머니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아이는 내 동생의 아들이다. 이 아이의 부모가 모두 미얀마에서 살해를 당했다”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그 이후에 하는 얘기들을 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종이를 접어 선물을 주었습니다. 라일리는 학을 접으며 학의 이름을 “shanti(평화)”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전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로힝자 언어 수업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인 누룰이 딸이 아파서 가족과 함께 병원에 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일요일 아침 일찍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딸이 지난 금요일 오후에 하늘 나라로 갔다는 얘기였습니다. 문자를 받고 참담했습니다. 미얀마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넘어 오자 마자 1시간 만에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저희도 그 딸을 봤었는데 정말 가냘픈 느낌이었지요. 한번씩 딸과 함께 병원에 가서 검진도 받고 예방주사도 맞아 건강한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침에 돌아갔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오늘 오후 누룰을 만나러 갑니다. 저희의 방문이 가족들에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입니다.
1. 죽음의 위협 아래 미얀마를 떠나 방글라데시로 넘어왔지만, 딸을 잃은 누룰의 가족을 위해.
2. 2월에 열릴 로힝자 난민 평화캠프에 사람들이 더 참여할 수 있도록.
3. 이번 주에 모즈누와 라일리가 한국과 인도네시아로 갑니다. 1차팀으로서의 역할을 잘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도록
4. 로힝자 난민들에 대해 방글라데시에서 미얀마로의 송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로힝가들에 대한 권리 보장이 무엇보다 선행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