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동티모르 평화캠프 참가소감문 (임소진)

2012.11.15 16:39

개척자들 조회 수:2035

  캠프를 다녀와서 남은 것은 살 뿐이다. 하루에 두 시간 수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단순 노동인데다 수업 준비도 앉아서 하고 운동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온 몸에 살이 붙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음식도 너무 잘 맞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하호호 웃으며 지냈으니 얼마나 살이 불었는지 예상이 가는가? 꼭 가야되겠냐고 출발하기 전날까지 묻던 엄마와 할머니도 살이 오른 내 모습을 보곤 갔다 오길 잘 했다고 할 정도다. 곧 이리저리 면접을 보러 다녀야 하는데 미리 사둔 정장이 너무 꽉 맞아 수선도 맡겨야 한다. 


몸의 군살보다 더 크게 부푼 살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 마음의 살일 것이다. 몸의 살은 웬만큼 정리를 해야겠지만 동티모르에서 얻은 마음의 살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형편없는 글 실력을 늘리기 위해 캠프 한 달 동안 거의 빠짐없이 일기를 썼는데, 매번 등장하는 이야기다. 동티모르에서 얻은 것들을 영원히 잃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조금씩 바뀌어 매일매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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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행을 결정하기 전, 고민을 많이 했다. 100프로 대기업 지원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난무한 요즘, 개척자들의 캠프는 비행기 표부터 참가비까지 모두 자비를 들여야 했고, 캠프 참여 후에 나에게 끼칠 영향의 크기 역시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너무 지쳐 있었다.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압박감, 예측 불가능한 인간관계, 조금씩 생기를 잃어가는 가족, 시대를 역행하는 사회 현실 속에서 웃음과 자신감, 살아야하는 이유를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용기는 없는데 욕심은 많아 꿈은 크고, 자신감마저 줄어가는 상황에서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경쟁만 치열하고 비슷비슷한 봉사활동 프로그램보다는 더 열악한 상황을 체험하는 개척자들의 캠프가 더 알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취업할 때까지 통장 잔고가 텅 비는 것을 감수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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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내가 얻고 싶은 걸 얻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개척자들 캠프 특유의 존중과 우정 덕분인 듯하다.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서 침낭 생활을 하느라 허리가 아픈 것쯤은 누워서 떡먹기였고, 휴지가 없는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그보다는 좀 더 까다로웠지만 피하지 않았다. 교통수단 없이 3-40분 씩 걸어 다니는 것도, 거미줄이 늘어져 있는 비좁은 화장실에서 고인물로 씻는 것도, 세 시간 동안 연기를 마시며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몸은 고단했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 친구들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데, 당연히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주 잠깐 들었던 거부감이 말끔히 사라지고 한순간에 적응해버렸다. “나 이런 경험도 했어~”라며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허세 가득하고 유치한 그 마음은 쏙 사라졌다. 오히려 쑥스럽기만 하다.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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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 또한 찾아냈다. 내 장점과 단점 모두 마치 제 3자가 바라보듯 날 바라볼 수 있었다. 캠프 일원들 만큼은 서로 마음을 활짝 열고 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사회와 마주하며 고등학교 때와는 인간관계가 참 많이 다르게 형성된다고 입이 닳도록 푸념하던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세상에 대해 너무 많아 알아버려 서로 믿기보단 경계하고 가식으로 그 경계심을 덮어버리는 인간관계 속에서는 내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상대방의 판단에 따라 내 평가가 달라졌기에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내 모습을 맞추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누군지 알 수 없었고, 남의 잣대에 날 끼워 맞추기엔 한계가 있기에 자신감 또한 잃게 되었다. 캠프 일원들은 서로 무슨 말을 해도, 무슨 행동을 해도 일단 먼저 들어주고 이해하려 들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모두가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해와 존중을 통해 난 내 마음과 몸이 시키는 대로 편안하게 행동하고 말했고, 그 결과 내 장점과 단점이 한꺼번에 튀어나왔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고 조용히 성찰할 시간도 있었으니, 멀찌감치 서서 내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구체적인 글이 좋긴 하나, 이 글에 내 장점을 쓰기엔 좀 부끄럽고 단점을 알리기엔 세상이 너무 좁다! 말할 수는 없지만, 장점을 발견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단점을 발견하며 반성하고 고칠 방법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이정도로 원하는 것만 얻었어도 동티모르행을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이보다 더 많은 걸 얻었으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주변인들의 소중함,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 남에게 도움이 될 때 느끼는 가슴 벅참, 물욕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혜, 사람들이 모여 살아야하는 이유 등등. 어느 나라에서 자랐건, 밥을 몇 끼 더먹고 덜 먹었던, 서로에게 마음만 열고 귀기울인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새로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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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교훈을 실천하며 살고 싶거늘 한순간에 현실에 적응해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취업 스트레스가 늘어날수록 짜증도 늘어나고, 굳이 필요 없는 것들에도 욕심이 고개를 든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동티모르에서 얻은 것들을 완벽하게 간직하고 살아갈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개척자들의 동티모르 평화캠프에서 얻은 또 다른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먼지 한 점 없는 완벽함을 위해 고통 받기 보다는 조금씩 천천히 행복하게 살아가기이다. 단, 열심히! 완벽하게 동티모르에서의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 때 배운 것을 기억하고 나에게도 남에게도 더 좋은 사람, 더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조금씩 천천히 행복하게, 단,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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