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변호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제 국회의원이 되셨으니 의원님이라 불러야겠네요. 의원님이 2012년 저를 위해 변호하셨던,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해군 SSU 대원들이 수중 집단 폭행한 사건에 대한 고소 건이 사실상 패소했을 때 무척 실망했습니다. 구럼비바위에 기도하려고 바다로 헤엄쳐 가는 민간인을 군인들이 수중에서 조직적으로 구타한 일로,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위중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변호사님이 국회의원이 되셔서 반가웠지만 잘 해내실까 걱정도 되었는데, 국회 의정 활동 하시는 모습을 보면 기대 이상으로 크게 활약하셔서 정치인이 더 체질에 맞는 분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주 해군기지가 완공된 강정마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군부 세력 확장을 위해 아름다운 구럼비바위를 파괴하고 부적절한 곳에 세운 위험한 군사시설을 평화적 목적을 위해 전환하고, 군사기지 안에 매몰된 구럼비바위를 최대한 복원하여 다시 시민에게 공원으로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군사 보호 구역으로 묶인 구럼비에 무단 침입했다는 이유로 다시 구속 수감되어 있습니다.

그간의 제 사정을 말씀드리자니 서문이 길어졌네요. 제가 의원님께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최근 세간의 중요한 관심사인 기본 소득과 관련한 조금은 과격한 제안입니다. 한때 사회적 약자들만 옹호하려는 급진적 소수파의 비현실적 주장으로 치부되던 기본 소득을 보수 야당 지도자들까지 합세하여 주장하는 상황이 된 것을 보면 때가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국민이 기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경제적 지원을 통해 책임져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기본 소득은 우리가 건너야만 할 시대의 강입니다. 모든 시민이 빈부 차이나 학력 차등 없이 동일하게 한 표의 투표권을 갖는 것처럼, 봉건영주가 차지하던 모든 토지를 빼앗아 농민들에게 나누어 준 토지개혁처럼,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건너야만 할 시대의 강입니다. 기본 소득은 경제적 약자를 위한 혁명과 같아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기본 소득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경제적 궁핍이 사회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재원 마련입니다. 재원 마련은 옳은 방식이어야 하고,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도록 효율적이어야 합니다. 기본 소득은 부자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국민의 경제적 기본 권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토의 기본적 사용권과 선조의 유산을 누릴 권한이 있습니다.

기본 소득을 위한 두 가지 재원으로 토지세와 상속세를 제안합니다. 토지세를 이야기하기 전에 현 토지세가 비현실적인 공시지가에 기초해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을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 시가의 1/3 혹은 1/2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은 공시지가는 가난한 시민을 위한 정부의 배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상 부당한 공시지가로 이익을 차지하는 사람은 부유한 거대 토지 소유자들과 고가 토지주들입니다.

공시지가를 낮추는 것은 상대적으로 부자에게 불의한 특혜를 누리게 하는 사악한 편법입니다. 토지세를 현실화하고 이 세금을 국민 숫자로 나누어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기본 소득의 기본 재원이 되어야 합니다. 국민은 우리나라 국토를 사용할 기본권이 있는데, 더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료를 더 많이 내고 적게 사용하는 사람이 더 큰 혜택을 보는 게 공정하지요.

기본 소득을 위한 재원을 보충할 또 하나의 세원은 상속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최대 50%인데, 더 높아져야 하고, 원하기는 모든 유산 상속을 폐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다른 나라보다 높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유산 상속은 국민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을 제공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가 더 공평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하기 위한 이 혁명적 법안을 누군가 발의해 주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가진 자들의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빨갱이들의 발상이라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결과를 평등하게 만들려는 데 반해, 저는 출발선을 동일하게 하자는 데 취지가 있습니다. 부모 유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가 나뉠 수밖에 없는 불공평한 사회를 국가가 더 이상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가능한 한 모든 국민이 같은 출발선에서 자유 경쟁을 시작할 수 있도록 공정한 규칙을 만들고 규칙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감독해야 합니다.

유산 상속 폐지가 개인 재산권과 의사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할지 모르겠습니다. 살아생전 자기 재산을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 일단 사망한 후에는 재산을 모든 국고로 환수하자는 말입니다. 누구도 자기 자신의 노력만으로 사회에서 지식이나 권력이나 부를 취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모든 업적과 성취는 다시 사회에 환원되는 게 옳습니다.

기독교계에서 손봉호 씨 같은 원로분들이 유산을 기부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본인 뜻에 따라 유산을 비영리법인에 기부하여 사회복지에 사용하거나, 사후 모든 유산을 국가가 환수하여 기본 소득 재원으로 충당한다면 우리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근로소득세와 부가가치세도 폐지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근로소득세는 신성한 노동을 통해 땀 흘려 벌어들인 소시민의 귀한 소득을 강탈하는 강도의 세금과도 같습니다. 암흑가 조폭들이 자기 구역 영업장에서 보호해 준다는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일에 비견되는 부당한 세금입니다. 정부는 열심히 일해서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을 격려하고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이 땀 흘려 번 돈을 빼앗아 가면 안 됩니다.

또 하나의 부당한 세금은 부가가치세입니다. 상품이나 서비스 가치를 창출하고 증대하는 창의적 노력에 과세하는 것은 그러한 노력과 활동을 감퇴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가가치세나 근로소득세처럼 쉽게 세금을 징수할 수 있는 데서 국가 재정을 마련하려는 행정 편의적 발상을 버려야 합니다. 종합소득세나 부유세같이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뜯어내는 모습도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가 죄인가요? 조세는 정의로워야 하고 정부는 정당한 조세 한계 내에서 활동해야 합니다. 토지를 배타적으로 점유 사용하거나 한정된 자원을 소모하는 것과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것에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공정합니다. 부동산 투기나 유산상속 같은 모든 종류의 불로소득은 전액 국가가 환수하여 국가 살림에 활용해야 합니다. 기본 소득은 이런 정당한 세금으로 재원이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 심화는 우리나라 평화를 해치고 더 잔인한 폭력 사회로 퇴보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스스로 선진국을 자처하는 미국을 통해 분명히 확인하고 있습니다. 100%의 상속세, 다른 말로 상속 폐지는 유산 공유라는 혁명적 발상입니다. 많은 저항 속에서도 토지 공유제가 전진하고 있고, 기본 소득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 핵심 의제가 될 수 있다면, 이제는 유산 공유를 위한 상속 폐지도 희망할 수 있는 시점에 온 게 아닐까요?

이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부모가 부유하든 가난하든 차별 없이 같은 출발선에서 인생을 경주할 수 있도록, 기본적 지원을 통해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낙오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공정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나가기 바랍니다. 부유한 자들, 권력을 쥔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총을 매게 하여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게 하는 나라는 결코 안전할 수 없습니다. 국민 스스로 자기 나라를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정의롭고 공평한 나라라고 믿을 때 그 나라는 국민에 의해 지켜집니다.

모든 국민이 기본 소득을 매달 50만 원씩 받는다고 가정한다면 매년 300조 원이라는 재원이 필요합니다. 상속 폐지 같은 특단의 조치 없이는 기본 소득 논의가 공염불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토지와 유산 공유 정신이 국민에게 공감을 받기 전에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기본 소득 제공을 통한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와 사유재산 제도 전반에 걸친 거국적 시민의식 전환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쉽게 돈을 빼앗을 수 있는 소시민들의 유리 지갑에는 더 이상 돈이 없습니다. 실제로 넉넉한 돈을 가진 부자들은 악착같이 탈세를 궁리하고 빠져나갑니다. 정의로운 조세 혁명을 통해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도 미처 하지 못하는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본 소득은 절망적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가족이 함께 목숨을 끊는 비극도, 조국을 헬조선이라고 비난하는 젊은이의 좌절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도리어 젊은이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자유롭게 협력하고 경쟁하는 활력 넘치는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박 의원님을 응원합니다. 기본 소득이 국회의 공염불이 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법제화할 길을 찾아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더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제안드렸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대한민국이 저처럼 군대도 전쟁도 없는 세상을 희망하는 사람도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지 않는 나라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에는 아직도 장마비가 내립니다. 의원님도 건강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평화를 빌며….

2020년 6월 27일
한라산 중턱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조세 혁명 없이 기본 소득은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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