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매일같이 수없이 드리던 인사가 애절하게 다가올 만큼 우리 사회는 불안해졌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팬데믹이 온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던 서구 복지국가와 강대국에서도 이 재앙으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끝이 언제인지도 모릅니다. 기약 없는 불확실한 미래가 안개처럼 우리 앞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작은 새도 하나님이 허락치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이 큰 재앙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인류에게 닥치진 않았을 겁니다.


이 재앙의 목적이 무엇인지, 도대체 목적이 있기는 한 건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북미·유럽 선진국 국민까지 대거 희생되는가 하면, 부유한 사람들은 타격이 적기도 합니다. 이 혼란을 기회로 오히려 더 큰 부를 거머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자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빈부 격차는 더 크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시적이나마 산업 활동 위축으로 미세 먼지가 줄어들고 대기질이 나아지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택배 포장 증가에도 불구하고 지구상 쓰레기가 조금은 줄어들겠지요. 그러나 이 거대한 전염병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큰 시사점은 우리가 추구해 온 삶의 기반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풍요로운 물질적 혜택만을 위해 달려왔습니다. 그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자연을 착취하고 더 많이 수탈하기 위한 폭력·살상·전쟁을 끊임없이 저질러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각자 목숨을 지키기 위해 부심하고 있습니다. 한 번의 들숨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지금 우리를 지키는 것은 총칼이 아니라 부드럽고 얇은 천으로 된 마스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격 앞에서는 군대도, 최신예 전폭기도, 핵 잠수함도, 항공모함도 속수무책입니다.


코로나19는 모든 나라 국민이 정작 두려워하고 방비해야 할 적은 이웃 나라 군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나다는 인간이 두뇌조차 없는 미생물보다 더 하등한 바이러스에게 맥없이 당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허황된 세상을 만들고 허상을 추구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가 맑은 공기를 마시는 데 만족하고, 소중한 생명을 지탱해주는 호흡에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면, 그동안 추구해 온 호사스러운 탐욕과 이를 지키기 위한 군대·전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감옥에서 제임스 도즈의 <악한 사람들 Evil Men>을 읽고 있습니다.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 병사들 인터뷰를 담은 책입니다. 인간이 저지른 일이라고 믿을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을 어떻게 평범한 젊은이들이 자행했는지 집요하게 추적하는 보고서입니다. 일제는 비인도적 전쟁범죄를 단호하게 중단해야 했습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그런 야만적 살상·폭행을 명령을 해서는 안 됐습니다. 미국과의 버거운 확전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쟁 중단의 명분은 충분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중일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이 명예를 잃을지 모른다는 애매한 이유였습니다. 살인,강간, 생체 실험, 대량 학살은 영예로운 전공으로 둔갑했고 이웃 나라 무고한 국민을 죽이고 문화유산을 파괴한 악마적 열정은 애국심이 됐습니다. 이런 자가당착이 결국 비참한 패망을 가져왔습니다. 일본은 자기 국민을 불구덩이에서 죽게 했고 문화재들은 잿더미가 됐습니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했던 일본 제국은 비웃음과 저주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인간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끔찍한 일은 실수이고 범죄인 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해 온 일에 대한 미련 때문에 잘못과 절연하지 못히고 주저하는 것입니다. 일제는 그것 때문에 패망했습니다. 


제가 이를 길게 설명한 까닭은 '군대'가 우리 시대에 청산해야 할 구악舊惡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까지 군대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한 역할과 비중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군대 때문에 먹고살고 있습니다. 군인은 물론 군속과 군산복합체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폐기한다는 말은 마치 몸에서 팔다리를 잘라 내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사실상 군대는 신체 일부가 아니라 암·혹 덩어리처럼 우리 사회를 파괴하고 생존을 위협해 온 '악'이란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유흥·관광산업에는 조직폭력배가 기생합니다. 조폭들은 영업 보호를 명목으로 업소를 갈취합니다. 군대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뿌리 깊은 통념은 조폭·깡패의 보호 없이는 영업이 불가하다고 믿는 업소 주인의 길들여진 사고방식과 같습니다. 군대와 대량 살상 무기 없이는 국가 안전과 평화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길들여진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길들여 온 불의한 지배자에게 저항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불행이 닥쳐올 때 항상 이 불행 뒤에 하나님 선물이 감춰 있을 거라 믿고 기뻐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신념으로 코로나19 대재앙 뒤에 숨겨진 선물이 무엇일까 묻습니다. 저는 이 재앙의 의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하고 인류가 쌓아 온 불필요한 쓰레기를 깨끗이 청산하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러운 쓰레기를 꼭 필요한 것으로 착각하며 모아 왔지만, 실상 그것은 우리를 병들게 하고 인간성을 파괴해 왔습니다.


저는 코로나19가 우리 이웃 나라는 두려움과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협력·연대해야 할 동지·친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적개심·증오심을 버리고 인류의 탐욕이 불러 온 환경오염·질병·차별·범죄를 함께 대응해 나가라는 훈계를 달게 받아야 합니다. 저는 이 팬데믹이 우리가 추구해 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금까지 살아온 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도록 기회를 주고 있다고 믿으려 합니다. 


위기는 우리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인류의 기본은 돈과 칼에 의지한 삶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에 기대는 삶입니다. 기본이 자연을 다시 살리고 서로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아갈 길을 열어 줍니다. 중세 최대 비극이었던 페스트가 중세 암흑시대를 몰아내고 르네상스·종교개혁의 새봄을 가져왔듯이, 우리 시대 팬데믹이 전쟁 없는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 주는 훈풍에 밀려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2020년 11월 15일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길들여진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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