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께서 미래 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는 남겨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매우 기뻤습니다. 지금 우리는 훗날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 나갈 사람들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망각하고, 당장 이익이 된다면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하려 듭니다. 심지어 10만 년이 지나도 그 영향이 사라지지 않는 핵 쓰레기를 그냥 땅속에 묻어 후손들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대통령님께 또 하나의 중요한 자연 공간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남겨 주자는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수변 지역입니다. 수변 지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닷가의 공유수면이고 다른 하나는 강·호수·개울 주변의 하천부지와 구거 부지입니다. 이 모두가 국가가 관리하는 땅이고 사유화를 금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수변 지역 특성상, 조석 간만의 차이도 있고 태풍·해일의 영향을 받는 바닷가에는 비교적 넓은 공유수면 지역이 있습니다. 호수·강·시내도 홍수 등에 의한 범람 위험성 때문에 일정 범위로 수변 지역이 설정돼 있습니다. 그런데 바닷가·강변·호수·계곡 등 수변 지역은 어디나 전망이 아름다워 각종 호텔이나 리조트, 고급 음식점과 카페, 호화 별장과 위락 시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설을 짓기 위해 공유수면을 매립하거나 하천부지 형상을 변경하고 그 과정에서 불법·편법을 자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자연 해안은 거의 다 사라졌고 호수·하천의 자연 형상도 계속 파괴되고 있습니다.

2010년, 중남미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 지진이 났을 때,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바닷가 근처 난민촌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이티와 인접한 도미니카공화국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바닷가마다 거의 다 부자들이 사유화한 개인 별장 부지가 점유한 탓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습니다. 수변 지역을 공공재산으로 엄격히 지정해 자연 상태 그대로 잘 보존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될 수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변 지역 보호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첫째, 바닷가 공유수면을 더 확대해 주십시오. 자연 지형 특성을 고려해 해안선으로부터 대략 1km를 따라 해안 도로를 만들고,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을 모두 공유수면으로 설정해 주십시오. 둘째, 하천과 호수는 그 수변으로부터 약 100m 정도에 수변 도로나 자전거 길을 만들고, 그 사이 공간을 공공 하천부지나 구거 부지로 지정해 주십시오. 이미 그린벨트라는 개발제한구역이 있듯이, 수변 지역을 블루벨트(Blue belt)로 지정해 자연 상태로 보존하고 공원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미 그 지역 안에 들어선 건축물에 대해서는 그린벨트처럼 신축이나 증개축을 제한하고 가능한 한 국가가 매입해 사유지 면적을 줄여 나가기를 바랍니다. 어부나 해녀처럼 바다와 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분들을 위해 항구나 선착장 등을 짓는 일은 꼭 필요하지만, 그 영역과 경계를 엄격히 설정해 주변부가 무분별하게 개발되지 않도록 규제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블루벨트를 제안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수변 지역은 아름답습니다. 누구나 아름다운 곳을 차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 부자밖에 없습니다. 한강 상류로 1시간만 운전해 팔당호반과 북한강변에 늘어선 별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아름다운 수변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제주도에서 공원 부지를 설정해 놓았지만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부지를 개인에게 매각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정을 보았습니다. 왜 굳이 돈을 들여야만 공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자연 상태 그대로에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누리기 원합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면 길이 되고, 머무르면 쉼터가 됩니다. 화장실 등 간단한 편의 시설은 인접 동·면 예산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발 수변의 자연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수변 지역은 자연재해 위험이 있습니다. 2004년 동남아시아 해저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해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에 큰 피해가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일본 후쿠시마에서 쓰나미가 일어났고, 이로 인해 원전 폭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아직도 그 재해가 미해결로 진행 중입니다.

쓰나미처럼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난은 200~300년에 1번씩 주기적으로 닥쳐오지만, 여러 세대를 거쳐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잊혀져 또다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방비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하천이나 개울도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빈발하는 곳이기에 자연재해 위험성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국민 안전을 위해서도 수변 지역 시설을 규제하고 자연을 보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땅은 좁고 인구는 많습니다. 부자들이 강남이나 세종시처럼 알짜배기 땅만 사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산천과 바다 어디나 조망이 아름다운 지역을 보면, 부자들 소유인 곳이 많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설악산·지리산·한라산 같은 명산을 함부로 사들여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엄격히 규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다와 하천 주변 지역은 그런 규제가 없어 아름다운 수변 지역 거의 대부분이 부자들 수중에 넘어갔습니다. 사유화한 수변 지역을 시민 모두가 쉬고 즐길 수 있는 공유 공간으로 되찾게 해 주십시오. 

저는 평화의 섬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 처음으로 바다가 공유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땅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세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바다도 소유해 사고팔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바다까지 인위적으로 쪼개서 사유화할 생각은 못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제 다시 바다로부터 공유 정신을 수혈받기 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땅도 원래 공유물이지 사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기 바랍니다. 사유와 공유의 경계선에 놓여 있는 수변 지역을 지켜, 모든 국민이 생명의 근원인 물가에서 생명력을 충전할 수 있는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전국에 장맛비가 퍼붓고 있습니다. 부산과 대전 등지에서는 수해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습니다. 물에 대해 인색하고 무심했던 우리를 향해 물이 복수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님은 바닷가에서 자라셨고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우셨으니, 제 뜻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물의 소중함과 존귀함을 지켜 주십시오. 국민 모두가 물의 혜택을 골고루 누릴 때 우리나라는 더 평화로워질 겁니다.

2020년 7월 30일
한라산 중턱 제주교도소에서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문재인 대통령님, 블루벨트를 만들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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