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신도시를 짓자


문재인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우리나라에는 원자력발전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과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매일같이 미디어를 통해 문 대통령님의 신재생에너지에 기반한 전력 생산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검찰까지 정부의 축소 지향 원전 정책에 대한 비리를 조사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원전이 과학 주제가 아니라 정치 성향을 가늠하는 판단 기준이 된 듯합니다.

저는 대통령님 의사에 반하는 제안을 드리려 합니다. 원자력 신도시를 짓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원전을 적극 지지하는 이들이 중심이 되어 원전 에너지 신도시를 개척하게 하자는 말입니다. 이들이 원자력 신도시 청사진을 만들어 이에 공감하고 찬성하는 지역을 찾아내 그곳 주민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원전 찬성론자들이 그곳에 함께 거주하면서 원전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게 해 주십시오. 도시 설계 첫 단계부터 원전을 중심에 두고 도시를 구성하게 하십시오.

원전은 많은 물이 필요하니 바닷가나 강가여야 할 것입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는 가장 흔한 이유가 냉각수 공급이니, 해수면 아래에 원자로를 배치하고 그 위에 신도시 시청과 시의회 건물을 짓습니다. 그러면 기계장치가 고장 나서 냉각수 공급에 이상이 생겨도 쉽게 지하수나 하천수나 바닷물을 끌어들여 자연 낙차로 원자로를 냉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의 악몽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신도시 주민들은 원전의 전기료를 가능한 한 싸게 사용하는 특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원전의 경제성은 찬성론자들의 가장 큰 지지 이유가 아닙니까?

그 '안전한' 원전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 어렵게 송전탑을 지을 필요도 없고, 전력 생산 원가의 1/3이나 되는 송전에 따르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자기 고향에 송전탑을 건설하는 일에 반대했던 밀양 할머니 같은 분들과 싸우는 불편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이 전기료 가격에 앞으로 10만 년 동안 핵폐기물을 관리할 비용을 반드시 포함해 산정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핵 폐기장 시설도 반드시 그 신도시 내부에 만들어야 합니다. 핀란드의 에우라요키 지역에 세워지고 있는 온칼로(Onkalo) 핵폐기물 처리장처럼 지하 500m 심층에 핵 처분 시설을 미리 지어 놓고 원전을 짓는 게 순서일 것입니다. 물론 핵폐기장 건설 비용과 예상되는 폐기물 관리 비용을 철저히 계산하여 전기료에 합산해야 합니다(테크네튬은 반감기만도 21만 년에 이릅니다).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들에게 발생하는 질환에 대한 역학조사도 실시해, 그에 따른 예상 배상액도 전기료 산정에 고려해야 합니다. 모든 안전 조치에도, 원전이 폭발할 경우 예상되는 사고 대처 비용도 현실적으로 계산해서 예산과 전기료에 반영해야 합니다.


2018년 한국전력이 원전 사고 시에 발생할 피해 보상액을 산정한 바 있습니다. 만일 고리 원전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피해 배상액이 1667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월성 원전의 경우는 1420조 원이 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원전 사고 시 한수원의 손해배상을 위한 보험 배상 한도액은 20년째 5000억 원입니다. 모든 부가 비용을 원전 생산 전기료에 가산하고도 어떻게 원전이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보다 더 경제적일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원전 찬성론자들은 이 모든 변수를 다 감안하더라도 갖은 이유를 들어 원전을 지어야만 한다고 주장할 따름입니다.

원전 찬성론자들에게 원전은 종교 신념 같아 보입니다. 이분들이 생각을 바꾸고 원자력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개종과도 같을 테니까요. 이들이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값싼 청정에너지이자 인류의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원전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들과의 소모적 논쟁, 정치적 대결로 국력을 허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원자력 신도시를 세워서 그곳에 원자력발전소, 원자력 연구소, 원자력 병원, 핵 의료 산업 시설, 첨단 원전(Advanced nuclear)으로 주목받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 산업 단지까지 마음껏 만들 수 있게 허락해서 한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원전 정책을 끊임없이 지지해 온 국민의힘 당사도, 원전 홍보 대사를 자임해 온 <조선일보> 사옥도 다 원자력 신도시로 이전시켜 달라는 국민 청원이 빗발칠 것입니다.

반면 원자력 신도시를 제외한 모든 지역은 비핵지대로 지정하여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은 지방의 산업과 기능을 고사하기에 이르렀는데, 신도시가 세워지면 수도권 집중도 막고 지방 분권화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만 원전은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절대 안 되니까 도시 설계 단계부터 심각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원전을 10만 년 이상 거의 영구적으로 완벽히 폐쇄·봉합할 수 있는 종말 처리 계획을 세워야만 합니다. 이 원자력 신도시 개발 프로젝트 이름을 '무저갱'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사실 묵시록에 등장하는 악마를 천년 동안 감금하는 '무저갱'이라는 지옥조차도 원전과 폐기물을 가두기에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에너지 정책은 우리 사회의 심장을 다루는 소중한 정책입니다. 지금까지 주된 에너지원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화력발전과 원전이었습니다. 원전은 위험하고 화석연료는 환경오염의 주역입니다. 문 대통령님은 신재생에너지를 향해 나가야 한다는 정책을 제시했지만, 원전 옹호자들 저항은 드세고 시대착오적 석탄 발전소는 계속 건설되고 있습니다. 4대강 건설로 22조 원의 국세를 무의미한 토건 사업에 탕진한 이명박 정부는 정권 말기에 미세 먼지와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하는 탄소 발생의 주역 대규모 석탄 발전소를 건설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이 구시대적 석탄 화력 발전소는 삼성·SK·포스코 같은 재벌만 배부르게 하는 17조 원 규모의 거대 토목 건설 사업입니다.

발전소가 뿜어낼 매연과 오염이 우리나라 발목을 잡을 게 불 보듯 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출된 비용을 배상하라는 재벌의 으름장에 못 이겨 오염 배출 발전소의 건설을 중단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그만큼 뒤처져 후진국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임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지은 것들의 매몰 비용이 아까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통령님께서 경각심을 일깨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연말은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한적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는 서울의 밤도 불 꺼진 어두운 밤으로 만드네요. 이번 성탄절은 어느 때보다 더 별이 빛나는 밤일 것입니다. 저 먼 우주에서 보내오는 별빛으로 전해지는 우주의 에너지가 우리의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살아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2020년 12월 7일
제주교도소에서
평화 수감자 송강호 올림

[출처: 뉴스앤조이] 차라리 원전 찬성론자만 모여 사는 '원자력 신도시' 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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